불교 이야기

- 8. 시비왕 본생 ② -

수선화17 2023. 7. 22. 22:44

(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 8. 시비왕 본생 ② -

 

진실된 보시와 서원으로 ‘진실바라밀의 눈’ 얻어

두 눈 보시한 시비왕, 장님된 신세 한탄하며 왕좌도 버려

“보시에만 머물지 말고 진실한 서원 세워야” 제석천 조언

보시해도 불행 올 수 있지만 끝엔 행복·희망 있음 보여줘

 

앞 연재에서 시비왕이 하나의 눈을 달라는 바라문에게

두 개의 눈을 다 빼서 주어버린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 다음 부분에서는 두 눈을 보시한 뒤 장님이 된 시비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시비왕의 탄식과

진실바라밀의 눈을 얻어 기뻐하는 왕의 즐거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시의 여러 가지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다.

 

두 눈 부위의 통증이 멎자 시비왕은 ‘눈 먼 장님에게 나라가 무엇이냐’ 하면서

출가할 생각을 하여 마부 한 사람만 데리고 왕의 동산에 있는 연못가에 앉았다.

그리곤 장님이 된 지금 나를 기쁘게 할 것은 죽음뿐이라고 탄식하였다.

그때 제석천이 이를 알고 왕의 눈을 본래대로 해주고자 하였다.

제석천은 왕에게 죽음을 희망하는 이유가 그저 죽음을 바라는지,

그렇지 않으면 장님이기 때문인지를 묻는다.

시비왕은 장님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제석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신들의 왕 제석천이라 부르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가 눈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시한 열매로서 당신의 눈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보시란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이 아닙니다.

미래 생을 위해서 눈 하나만 보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눈으로 보이는 세상에 연결된 이유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눈 하나의 요구를 받고는 두 눈을 모두 다 보시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에 대해 진실한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만일 내게 눈을 주시려거든 다른 방편은 쓰지 말고

내가 보시한 결과로 내게 눈이 생기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보시는 완전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진실의 서원을 세웠다.

 

‘아무리 여러 족속의 사람들이라도/

내게 청하러 오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 진실한 내 말에 의해/

내게 그 눈이 생기기 바라네’

이 말 끝에 첫째 눈이 생겼다.

 

‘내게 요구해 온 사람 그 바라문은/

눈 하나 가지고 싶다 했다/

나는 그 바라문에게 두 눈을 모두 주었네/

내게 요구해 온 그 사람에게//

그러자 더 큰 기쁨과 환희, 나를 파고 들었네/

그 흐뭇함 어찌 적다 말하랴/

이 진실한 내 말에 의해/

또 하나의 내 눈이 생기기를’

 

그 순간 둘째 눈이 생겼다.

그 눈은 날 때부터의 그것도 아니요, 신들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진실바라밀의 눈’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왕의 눈이 본래와 같이 되었다는 소문이 온 시비국에 퍼졌다.

왕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왕은 왕궁 입구에 임시 건물을 짓고

달마다 두 번 보름날마다 네 개의 게송으로 설법했다.

 

‘달라고 하는데 ‘안돼!’라고 누가 말하리/

가장 값지고 서로 갖고 싶어하는 최상의 것일지라도/

오~ 왕궁 앞에 모인 시비국의 백성들아/

여기로 와서 신이 선물한 내 눈을 보라!//

어떤 장애물 있어도/

벽과 큰 바위를 뚫고 언덕과 계곡을 넘어서/

내 눈은 볼 수 있나니/

사방 백 유순을//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기희생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것/

나는 문드러져 썩어 없어질 눈을 희생하여/

하늘 눈을 받았노라//

보라, 백성들이여, 그대들이 먹기 전에 주라/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한 몫을 가지게 하라/

그대들의 최선의 의지와 배려로 이렇게 행하면/

하늘에 부끄러움 없이 그 보답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보시 등 복덕의 행을 했기 때문에

죽어서는 모두 천상 세계에 가서 그곳을 가득 채웠다.

그때의 시바 의사는 아난다요, 제석천은 아나율이며,

그 밖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시비왕은 부처님이었다.

 

시비 본생의 의미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기희생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육신의 눈을 주고 하늘 눈을 얻음으로써 증명되고 있다.

이것은 자기희생적 보시이다.

부처님께서 바라밀행의 마지막 생인 베산타라 왕이었을 때에도

다른 바라밀이 아닌 보시바라밀로 일관함으로써 바라밀을 완성하셨다는 것에서도 증명된다.

 

시비 본생은 보시를 행하더라도 곧 불행이 찾아올 수 있고,

그 불행 끝에는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보시의 선행이 극에 이르고 그 극단에 이른 보시가

현재의 삶을 파괴하였다가 진실에 의해서 다시 복원되고 더 나은 결과를 낳고 있다.

동일한 구조가 자식과 아내를 보시한 베산타라 본생에서도 반복된다.

우리나라의 심청전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임당수에 빠져

목숨을 버렸다가 왕비로 되살아나는 이야기도 동일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왜 선행은 행복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불행을 겪은 뒤에야 행복으로 가는가?

선행은 불행을 겪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완전해진다.

그리하여 보시바라밀이 완성에 이른다.

 

선행이 초래한 불행이 다시 행복으로 가는 티켓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하는 보시야말로 그 보시를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비왕 역시 진실의 서원을 통해서 눈을 회복한다.

 

시비왕이 두 눈을 다 보시하고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왕의 동산 연못에 앉아서

“이제 나를 기쁘게 해줄 것은 죽음 뿐이다”라고 독백하는 장면은

이 본생담을 너무도 솔직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솔직함이 진실의 토대가 되어준다.

또한 시비왕은 보시를 “최선의 의지와 배려”로 행하라고 하고 있다.

이것이 진실된 보시자의 태도이다.

 

이제 두 개의 진실바라밀의 눈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두 가지 진실에 주목해보자.

첫 번째 진실한 말은 “아무리 여러 족속의 사람들이라도

내게 청하러 오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이다.

여러 본생담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것이지만,

부처님은 보시를 행할 때 차별 없는 자비심으로 보시하였다.

부처님을 양족존이라 하는 것은 자비와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인 것이니,

자비심은 뿌리요, 정진은 줄기이며, 지혜는 열매인 것이다. 

 

두 번째 진실한 말은 “나는 그 바라문에게 두 눈을 주었네,

내게 요구해 온 그 사람에게. 그러자 더 큰 기쁨과 환희, 나를 파고 들었네”이다.

보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보시가 주는 기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삶을 풍족하게 한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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