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30. 하스티 본생(‘자타카말라’) -

수선화17 2023. 9. 10. 20:23

(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 30. 하스티 본생(‘자타카말라’) -

 

행복 전할 수만 있다면 고통조차 이득이다

굶주림·갈증으로 죽어가는 칠백 명 낯선 이들 본 코끼리왕

나가는 길·방법 알려주고 앞질러 가 절벽서 자신의 몸 희생

분별·댓가 바라지 않는 보시행이 열반의 언덕으로 가는 길

 

화려한 수식이 돋보이는 위대한 희생 이야기 하스티(코끼리)본생은

아리아 슈라(Ārya Śūra, AD 1~3세기)의 ‘자타카말라’에 전한다. 아잔타 16, 17굴에 그려져 있다.

 

한 코끼리가 매력적인 숲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더 이상 다른 곳이 생각나지 않는 곳에 보금자리를 가졌다.

그 숲에는 꼭대기에 잔가지들과 꽃들과 열매들을 장신구처럼 달고 있는

싱싱한 나뭇가지들을 가진 훌륭한 나무들이 많았다.

숲의 바닥은 다양한 종류의 관목과 풀들로 가려졌다.

야생 동물들과 깊은 호수가 있는 그곳은 산마루들과 산 정상의 평지들로 둘러쳐졌다.

그러나 그곳은 모든 방위들이 큰 사막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

사람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삶은 게송으로 표현되었다.

‘금욕자처럼 나무이파리들과/

연꽃 줄기들, 물을 즐거워하며/

만족과 평온을 즐기며/

그곳에 머물고 있었네.’

 

어느 때 사막 쪽에서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 방향은 마을로 통하는 길도 없고,

거대한 황무지를 건널 사냥꾼 무리도 없을텐데”하며 코끼리는 소리 난 방향으로 나아갔다.

 

덤불을 통과하자 멀리서 숲을 보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코끼리는 눈 덮인 산봉우리, 큰 덩어리로 응결된 하얀 안개,

바람에 휘몰아치는 가을 구름처럼 느껴졌다.

이 모습은 배고픔, 목마름, 피로로 지쳐있던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코끼리왕은 “두려워 마십시오! 훌륭하신 분들이시여,

당신들은 누구며 어떻게 이 나라에 오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말했다.

“코끼리왕이시여, 폭발한 왕의 분노가 우리를 친척의 눈에서 먼 이곳까지 날려버렸습니다.

왕이 우리를 여기에 내버렸을 때 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역경을 경험한 적 없어 배고픔과 목마름, 슬픔으로 죽었습니다.

아직 살아 있지만 죽음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가 칠백 명입니다.

 

이 말을 듣고 코끼리는 “그 왕의 마음은 부드러움과는 상극이며,

부끄러움이라고는 없으며, 다음 생에 대한 티끌만큼의 걱정도 없단 말인가?

왕실의 화려함에 사로잡힌 채 번갯불 같이 변덕스러운 그의 감각들은

얼마나 선(善)에서 멀어져 있단 말인가!

이 잔인함은 하나뿐인 몸 때문에 저질러진 것이다.

몸이란 병들어 썩어가는 물질에 불과한데도!”라 하였다.

 

그에게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배고픔, 목마름, 피로 때문에 저들의 육신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광대한 사막을 저들이 어찌 건널 것인가?

거기에는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데. 이 숲 역시 단 하루 먹을 음식도 없다.

그러나 저들이 내 다리의 살덩어리를 식량으로 삼고 내 창자를 물 담을 포대로 쓴다면,

저들은 사막을 건널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천상의 축복, 궁극의 열반 같은 행복에 도달하기에 적합하다.

사람으로 태어남은 어려운 일이다.

이 좋은 기회가 얼음 녹듯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드디어 나는 병과 고통과 악의 집합체인 이 몸의 쓸 곳을 제대로 찾았다.’

 

코끼리왕은 장대한 그의 코를 들어 올려 저 너머 산을 가리켰다.

“저 산 아래에 큰 호수가 있습니다. 곧장 이 길로 가십시오.

호숫물로 갈증을 풀 수 있고 피로와 열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그 후 계속 그 길을 따라가면 머지않아 산마루에서 떨어진 코끼리의 시체를 만날 것입니다.

그 코끼리의 다리 살을 여행에 쓸 식량으로 챙기고,

코끼리의 창자로 물을 담을 포대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해서 당신들은 이 사막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자신은 다른 길로 빨리 달려서 그 산 정상에 올라 다음과 같이

스스로 마음을 변호하여 자신의 결정을 굳게 했다.

 

“이 행위는 나의 지고한 상태의 성취에 도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왕의 영광을 위해서도 아니며, 왕의 일산을 소유하기 위함도 아니며,

뛰어난 즐거움을 맛보는 천신을 위함도 아니며,

범천 세계의 축복을 위함도 아니며, 해탈의 행복을 위함도 아니다.

내게 이익이 있다면, 윤회의 황무지에서 헤매는 저들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결심하자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라,

저 깊은 추락으로 몸이 으스러져 겪을 고통스런 죽음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저 가파른 산 아래로 자신을 던졌다.

 

그의 몸이 땅에 닿을 때 회오리 바람의 굉음과 함께,

대지와 산뿐만 아니라 마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숲에 살던 신들도 극도로 놀라면서 감동을 받아 몸의 털이 곤두서고,

어떤 신들은 꽃을 뿌리고, 다른 신들은 부채로 향기를 풍겼다.

어떤 신들은 금장식으로 빛나는 그들의 웃옷으로, 혹은 장신구로 그를 덮었고,

다른 신들은 하늘의 짙은 구름이 덮개가 되도록 잡았다.

하늘은 가을의 장관을 이루고, 햇빛은 길어지고, 바다는 출렁대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호수에 도착해서 생기를 되찾았다.

그런 뒤 눈 덮인 산봉우리 같은 코끼리의 몸을 보았다.

그것은 떼지어 핀 수련의 빛나는 물방울 같고, 달빛 같고, 거울에 반사되는 듯 빛났다.

기쁨으로 웃고 있는 코끼리의 얼굴은 그의 자기만족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체가 조금 전의 그 코끼리임을 알아보고

“이것은 상상을 초월한 경이로운 일이다.

불행으로 토막 나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족, 행동,

신념을 물어보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이, 너무도 큰 우정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이 위대한 희생 앞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누가 이처럼 극도로 덕 있는 존재의 몸을 먹을 것인가.

차라리 화장하는 것이 좋겠다.”

 

더 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그의 의도를 이루어주는 것이야말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이방인인 그가 자신의 소중한 몸을 포기한 것은 우리를 구하려는 목적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환대를 결실 있게 하고, 우리 자신의 안녕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코끼리의 몸에서 식량을 취하고

그 창자를 꺼내어 물을 채워 물주머니로 사용하였다.

그런 뒤 그가 지시한 방향을 따라 안전하게 황무지를 건넜다.

고통이 다른 이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면, 고통조차 이득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동물의 몸을 받으셨을 때조차 실천한 법이다.

 

나아가 그 이득조차 코끼리는 바라는 바가 없었다.

왕의 지위는 물론이고 해탈마저 바라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또한 코끼리는 칠백 명의 가족, 행동, 신념을 물어보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이 보시를 하였다.

보시를 행함에 분별이 없고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을 때 진정으로 환희심이 솟는다.

이것이 보시자를 열반의 언덕에 데려다 준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