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38. 마이트리발라왕 본생(‘자타카말라’) ② 왕과 장관들의 논쟁 -

수선화17 2023. 9. 24. 20:31

(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 38. 마이트리발라왕 본생(‘자타카말라’) ② 왕과 장관들의 논쟁 -

 

이방인 위한 희생은 자타 넘어선 자애의 확장

살·피 요구하는 야차에게 기쁘게 자신의 몸 보시하려는 왕

“왜 백성 돌보지 않는가” 반발하며 만류하는 대신과 충돌

모든 이 이익·번영위해 분별심 없이 보시해야 진정한 자애

 

따뜻한 사람 고기와 피를 달라는 야차들의 요구에 왕은 “드디어 내가 할 일을 찾았다”고 기뻐하였다.

“움푹 들어간 눈, 시들어빠진 얼굴을 한 간청자들의 몰골로 보아 저들의 배고픔은 너무도 크다.”

 

“나는 내게 간청자로 온 사람들의 얼굴에 슬픔을 안겨본 적이 없다.

단 하루도 겨울바람에 시들어가는 연꽃과도 같이

그들을 좌절시키거나 고통 받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자연사한 동물의 고깃살은 차갑고 피가 다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어떻게 내가 다른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에서 살덩어리를 떼어낼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살덩어리를 주어야 한다.”

이렇게 결심하자 위대한 마음을 가진 그의 눈과 얼굴은 기쁨의 분출로 인해 더욱 광채로 빛났다.

그는 야차들에게 말했다.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만 간직해온 이 살과 피로써 지금 그대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내게 행운이며 크나큰 선보(善報)가 있으리라.”

 

야차들은 왕의 결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고통을 감수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라고 외쳤다.

왕은 오히려 이 말을 그들의 동의로 생각하고 기뻐하며 의사들에게 그의 정맥을 열게 했다.

이때 궁중의 장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왕의 행위가 선이든 악이든,

과도한 사랑에 휩쓸려 그 행위의 결과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위대한 왕은 악인들의 본성에 무지할 리 없습니다.

당신의 백성이 불행해지는 것을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 저들의 본성입니다.”

 

“저 다섯 명을 위해서 백성을 재앙의 구렁텅이에 던져버리는 것이

폐하의 올바른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폐하의 기쁨만 생각지 마시고,

백성의 행복만을 위해 왕족으로서의 고된 책무를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체는 온전하며 쓸모 있는 것입니다.

폐하는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왕은 장관들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분명한 말로 요구받는다면,

가지고 있으면서 갖고 있지 않다고,

혹은 주지 않겠다고 거짓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법다움에 있어서 당신들의 지도자로 통한다.

내가 겁쟁이고 자기 사랑에만 빠져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나의 행동을 기꺼이 따르는 나의 신민들은 어떤 상태에 놓이겠는가?

내가 내 몸에서 살덩어리를 떼어낼 용기를 가지는 것은 나의 백성을 위한 배려에서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대들이 아니라 나이다.

지금 나의 팔다리는 크고, 단단하며, 살쪄 있다.

당신들이 나를 대신하여 팔다리를 보시하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돈, 재물, 일자리를 원하는 거지들은 매일 볼 수 있지만,

살아있는 따뜻한 살과 피를 달라는 자들은 신들을 달래더라도 만나기 어렵다.

흔치 않는 간청자들이 나타난 지금 머뭇거리는 것은 정신의 조악(粗惡)함이리.

여기서 비참한 자기애(自己愛)는 가장 깊은 어둠이리.”

 

이렇게 설득한 왕은 의사들에게 그의 몸에 있는 다섯 가닥의 정맥을 열게 하고,

그 야차들에게 말했다.

“풍족히 먹고 최고의 기쁨을 얻으라.”

 

난디야미가 본생담(385번)에 설해진 시왕법(十王法, dasa rajadhamma)은

보시, 지계, 희생(pariccāga), 정직, 온화, 고행(tapo, 검소함),

무분(無忿, akkodha.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는 것),

불해(不害.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 인욕, 화합이다.

시왕법은 대부분 자애에 기반하고 있다.

그 중에 희생은 백성들을 위해 왕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것이다.

 

마이트리발라 왕은 시왕법 중 희생을 실천하려 한다,

그러나 그 희생이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다른 집단을 위한 것일 때 더욱 쉽지 않은 문제이다.

왕이 이방인을 위해 희생하려 하자 장관들은 즉각 반대하고 나선다.

더구나 이방인은 소수의 악한 자들이며,

그들을 돕는 것은 다수의 자국 백성에게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장관들에 대한 왕의 재반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어찌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있느냐? 가지고 있는데.

둘째, 자신이 왕인 이유가 법다움에 있어서의 지도자이다.

그러므로 왕의 법다운 행위로서의 희생은 백성에게 배려이다.

 

첫째, 왕은 자애의 힘이 강력하여 그것이 백성을 보호하는 방패막이었다.

이제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이방인 야차들에게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벳산타라 왕일 때에는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는 코끼리를

가뭄 든 이웃나라에서 달라고 했을 때 두말없이 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백성들에 의해 추방당하였다.

마이트리발라 왕의 장관들은 말로만 반대하고 있지만,

벳산타라 왕의 백성은 왕의 추방이라는 결정을 행동에까지 옮기고 있다.

그러나 그 왕은 추방당하면서도 700의 대보시를 행했고,

추방당해서 숲속에 움막을 짓고 살 때

바라문이 와서 자식과 부인을 시동, 시녀로 달라고 했을 때도 자식과 부인을 보시했다.

 

부처님은 여러 생에서 이방인들, 즉 다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니그로다미가 왕이었을 때에, 임신을 한 상태에서 단두대에 오를 순번이 된

어미사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스스로 단두대에 올랐다.

 

코끼리 왕이었을 때는, 인간의 왕에 의해 추방당한 천 명의 사람들 중

살아남은 칠백 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쳤다.

칠백 명은 코끼리왕의 고깃살을 식량으로 삼고

창자를 물주머니로 삼아 사막을 건너 살아나갈 수 있었다.

 

장관들의 또 다른 반대 이유는 그 이방인이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야차들은 왕의 백성이 불행해지는 것을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 본성인 자들이다.

 

자애는 모든 이의 이익과 번영을 바라는 것으로 피부색, 출신, 재산,

지위, 원수와 친구,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자도 구별하지 않는다.

 

자력왕 마이트리발라는 이러한 자애의 힘에 의하여 이방인 야차들의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다.

‘금강경’의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는 보시한다는 생각도 없고,

보시물도 보지 아니하며, 보시를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보시이다.

 

코끼리왕의 살과 창자를 보시 받은 칠백 명의 사람들은

“불행으로 토막 나있는 우리에게 가족, 행동, 신념을 물어보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이 너무도 큰 우정을 보여주었다”고 감격해마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보시의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둘째, 왕의 희생이 재앙인가 배려인가? 장관들의 반대 이유는 악한 결과 때문이다.

왕의 희생이 악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구체적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하도록 하겠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