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숙소에서 제호 얻는 비유 -
[용하 스님의 열반경 이야기]
- <15> 숙소에서 제호 얻는 비유 -
“좋은 풀 먹이면 좋은 우유 얻는다”
‘좋은 업’ 계속 쌓아나가다 보면
우리 삶의 괴로움ㆍ번뇌 걷히고
마침내 ‘나’라는 부처 만나게 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자아와 무아의 성품은 둘이 아니다.
비유하면, 마치 우유에서 낙(酪)이 생기고,
낙장에서 생소(生酥)가 생기고, 생소에서 숙소(熟酥)가 생기고,
숙소에서 제호(醍醐)를 얻는 것과 같다.
이때 낙의 성질이 우유에서 생기는가, 아니면 스스로 생기는가,
아니면 다른 데서 생기는가?
만일 다른 데서 생겼다면 이것은 우유에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우유가 낙이 생기는 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만일 낙이 스스로 생긴 것이라면 마땅히
그 밖의 비슷한 것들(생소, 숙소, 제호)이 잇따라 생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잇따라 생긴다는 것은 한시에 생기지 않는 것이요,
한시에 생기지 않는다면 곧 다섯 가지 맛(우유, 낙, 숙소, 숙소, 제호)이 동시에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맛들이 우유가 아닌 다른 데서 온 것이라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우유 속에 본래 낙의 특징이 있지만, 인연이 없어 스스로 변하지 못한 것이다.
나아가 생소, 숙소, 제호 등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소가 풀을 먹은 인연으로 피가 변하여 하얗게 된다.
그리고 풀과 피가 없어지고 중생의 복력이 변하여 우유가 된다.
우유가 비록 풀과 피로부터 나오지만,
두 가지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없으며, 오직 인연으로부터 난다고 한다.
낙으로부터 제호에 이르는 것도 그와 같다.
우유가 없어지는 인연으로 낙이 되니, 어떠한 인연인가? 발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다는 것이며, 나아가 제호가 되는 과정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명(明)과 무명(無明)도 그와 같아서 만일 번뇌의 결박과 함께하면 무명이라 하고,
모든 선한 법과 함께하면 명이라 한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먼저 말하기를 ‘설산에 비니라는 풀이 있는데,
소가 이것을 먹으면 제호를 얻는다’고 한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다.
마치 설산이 비록 여러 가지 공덕으로 많은 약초가 나지만 독한 풀도 있듯이, 중생의 몸도 그러하다.
비록 독사 같은 사대(四大)의 종자가 있지만 그 가운데도 묘한 약이 있으니, 곧 불성이다.
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만 번뇌에 덮여있으므로 중생이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생은 자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찰리든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번뇌를 끊기만 하면 불성을 보아 위없는 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 <대반열반경> 제8권 ‘여래성품’에서
이 설법은 우유에서 최상의 유제품인 제호를 얻는 비유를 통하여,
중생이 불성을 얻는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우유에서 낙도 나오고 제호도 나오듯이,
우리는 중생의 종자도 여래의 종자도 모두 품고 있다.
낙과 제호의 성질이 우유의 외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듯이,
중생의 성품도 여래의 성품도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구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내부에 숨겨진 불성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마치 소가 좋은 풀을 먹으면 좋은 우유를 얻듯이,
좋은 업을 계속 쌓아나가다 보면, 우리네 삶의 괴로움과 번뇌도 걷히고,
마침내 ‘나’라는 부처를 만나게 된다.
물론 ‘성찰’이라는 발효의 과정도 잊지 말아야겠다.
[불교신문 3765호/2023년4월25일자]
용하스님 포천 정변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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