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46>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도 방편이다 -

수선화17 2024. 2. 4. 20:29

[용하스님의 열반경이야기]

- <46>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도 방편이다 -

 

중생에게 환경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조건

결핍된 것이 있어 그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유로 열반 못해

단, 소유 아닌 잠시 담는 방편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일이다.

어느날 한 비구가 찾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도를 닦아왔지만,

아라한은커녕 수다원의 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 아난을 부르셨다.

“지금 이 비구를 위해 방을 하나 내어주고,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해 주어라.”

아난은 곧 그 비구를 정사에서 나름 좋은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러자 비구가 아난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청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이 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수리한 후 일곱 가지 보배로

장엄하게 꾸미고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아난은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난한 이를 일러 사문(沙門)이라 하는데,

내가 어찌 그런 것들을 마련해줄 수 있겠소?”

 

그러자 그 비구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만약 나에게 이런 것들을 마련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세존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겠소.”

 

아난은 곧장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난번 그 비구가

저에게 갖가지 장엄과 일곱 가지 보배로 장식한 번기와 일산을 요구합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고하셨다.

“그대는 돌아가서 그 비구가 원하는 대로 모두 마련해 주어라.”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대로 비구의 방을 꾸미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제서야 비구는 방에 거처를 정하고 이후 마음을 모아 수행에 임하였다.

오래지 않아 비구는 수다원의 과보를 얻고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를 두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는 중생이 응당 열반에 들 수 있지만,

결핍된 것이 있어서 그 마음을 방해하고 어지럽히는 이유로 열반을 이루지 못한다.”

-<대반열반경> 제36권 ‘가섭보살품’에서

 

<금강경>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은 항상 마을마다 맨발로

직접 탁발을 다니신 대목에서 나타나듯이,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셨다.

그러나 한편으로 6년간 극도의 고행을 이어가시던 부처님께서 따뜻한 우유죽 한 그릇으로

몸을 추스르시고 나서 마침내 구경의 해탈을 이루신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저 비구는 당시 오랜 수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이 필요했으며,

좀처럼 진척 없는 참구 과정에 대한 환기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걸 아시기에 부처님께서 청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경문에서 설하시길,

어떤 사람은 근기가 예리한데도 불구하고 현세에 열반을 이루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사대(四大), 즉 몸이 쇠약하여 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사대가 건강하더라도 집·음식·의복·잠자리·의약이 부족할 경우

갖은 인연들을 구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다.

물질의 기세간(器世間)에 발 딛고 사는 중생에게

건강과 좋은 환경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조건이다.

배고픈 사람이 보는 정토는 기름진 정토이고,

불편부당에 시달린 사람이 보는 정토는 평등한 세상이다.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에 맞추어 무량한 몸으로 현응(顯應)하시는 이치 또한 마찬가지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저 비구에게 있어

칠보로 장식된 방은 소유가 아니라 잠시 몸담는 방편이란 점이다.

 

용하스님/포천 정변지사 주지

허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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