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3> 분별심 없애는 방법은 놓아버리는 ‘방하착’ -

수선화17 2024. 2. 13. 23:51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3> 분별심 없애는 방법은 놓아버리는 ‘방하착’ -

 

제3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

➲ 본문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털끝만큼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간격이 벌어진다.

 

➲ 강설

여기서 유차(有差) 즉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것과 저것의 분별(分別)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유차(有差)의 의미인 분별을 논하고자 한다.

 

따라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반대의 하나가 또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상반된 두 가지가 수천 수만가지의 분별을 낳게 되고

끝없는 분별이 생김으로써 계속하여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의미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자 싫은 것을 멀리하게 되고,

또 싫은 것을 멀리하려니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면서 끝없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크게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터럭만큼의 분별심이 있으면 터럭만큼의 고락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작은 욕심이 점점 더 많이 생기다 보면 수천 수만가지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천지(天地)를 삼키려는 욕심으로 인해 하늘 땅만큼의

고락의 인과가 생김으로써 천지만큼의 고통과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털끝만큼의 분별심을 없애야만 하늘 땅만큼의 분별심을 막을 수가 있는데,

이러한 분별심을 없앤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떻게 해야 분별심을 없앨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방하착(放下着)이다.

즉, 곧바로 생각과 감정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일단 인과를 믿는 신심(信心)을 굳게 가져야 방하착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수없이 설명했듯이, 좋은 것을 하나 얻으려고 하거나 혹여 얻었다면,

나쁜 것 하나가 이미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언젠가는 나쁜 것 하나가 반드시 나타나 과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

 

부자이건 빈자이건, 명예가 높건 명예가 없건, 잘 생겼던 못 생겼건,

큰 일을 하건, 작은 일을 하건, 늙은이 건 젊은이 건, 여기에 살건 저기에 살건,

보살행을 하건, 도둑질을 하건, 살아있는 이건, 죽은 영혼이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는

누구나 같은 것이므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차이가 없이 나타난다.

 

다만 분별심이 작은 사람은 작은 인과의 고통을 받고,

분별심이 큰 사람은 인과의 고통을 크게 받는다.

즉,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인과의 고통이 없다.

그러므로 원하는 것이 크고 작음에 따라 크고 작은 인과의 고통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은 이렇게 되어야 좋고 저렇게 되면 좋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의 인연 따라 저절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할 일이 아닐뿐더러 상관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되면 좋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분별심으로 인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순전히 나의 생각으로서 나 스스로 좋고 나쁜 고락의 인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다고 하는 생각을 멈춘다면 좋지 않다고 하는 것 또한 생겨나지 않게 된다.

이런 것이든 저런 것이든 그냥 그대로 인연이 흐르는 모습만 그저 바라볼 뿐,

분별심을 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마음이다.

 

세상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통해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다.

좋고 나쁘게 생각하는 내 마음만 인과의 파도가 출렁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라는 생각이나 감정을 가진다면 고락의 인과를 받게 된다.

 

다만 인연에 따라 주장을 할 수도 있고, 고집을 피울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고, 웃고 울고 할 수도 있다.

설사 그렇게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생각이나 감정을 얹지만 않는다면

그나마 분별심을 내지 않고 중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오늘은 절대 감정을 얹지 않고 분별하는 생각을 놓아버리는 즉,

방하착(放下着)하는 날이 되기를….

➲ 송(頌)

좋다고 하는 생각을 멈추면
좋지 않다고 하는 것 또한
생겨나지 않게 되므로,
이런 것이든 저런 것이든
그냥 그대로 인연이 흐르는
모습만 그저 바라볼 뿐…

 

제4화 따라가는 것, 거스르는 것, 모두 지는 것이다

➲ 본문

욕득현전(欲得現前) 
막존순역(莫存順逆)

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따라가지 말고 거스르지도 말라.

 

➲ 강설

얻으려 하는 도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 진정코 원한다면,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서 얻으려 하는 것은 바로 중도(中道)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따라가지 말라’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자 하는 감정에 끄달리지 말라는 말이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자 하는 감정을 따라가면

인과(因果)의 과보가 생겨서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이다.

 

또 ‘거스르지 말라’는 것은 보고 듣는 것에 감정을 일으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중도의 마음이 내 앞에 드러나게 되는데,

못마땅한 불만의 마음과 괴로운 마음,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현전(現前)된다는 뜻이다.

 

이 대목도 역시 분별심을 갖는 것에 대한 경계의 내용이다.

분별심을 갖지 않아야 중도의 마음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감정을 일으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몸이 좀 피곤하고 고단할 때는, 짜증을 내면서 기분 나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편안하고 활발한 때 즐겁고 편안한 감정을 가진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플 때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몸으로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가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인과의 과보로서

아픈 감정의 마음을 갖게 되는구나.’하고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와의 시비 다툼으로 인하여 속이 많이 상할 때도,

‘그동안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즐겁고 기쁜 감정을 가졌던 인과(因果)로 인해

그만큼의 속상한 과보(果報)로써 기분 나쁜 시비(是非)로 다툼을 하고 있구나’하고

마음을 얼른 추스려야 한다.

 

또 남에게 돈을 떼이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생겨서 기분이 몹시 나쁘다면,

‘언젠가 내 손에 돈이 들어왔을 때 기분이 몹시 좋았던 때의 인과로 인해 이러한 과보가

생기는구나’ 하고 고락의 인과를 생각하면서 감정을 일으키지 말고 얼른 잊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내가 좋았던 만큼의 고락(苦樂) 인과로 인해

좋지 않은 인과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감정의 인과는 한치 오차없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분이 좋지 않고 속상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지난 과거의 좋았던 때의

대가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얼른 속상한 마음을 접고 잊어야 한다.

 

좋은 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나쁜 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이 모두가 고락 인과의 과보로서 생기는 것들이다.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어떤 기막힌 일이 생기더라도, 감정에 휘둘려 따라가지 말고,

또 나타난 일에 대해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머지않아 중도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중도의 마음을 갖는 지름길이 된다.

➲ 송(頌)

사건 사고가 많다 해도 
지나가는 개미에게는 남의 일이듯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간섭할 능력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볼 뿐,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시비분별은 결국 나의 몫.

 

[불교신문 3757호/2023년2월28일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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