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마음 갈 곳 없어지면 훤히 비추되 고요하다” -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9> “마음 갈 곳 없어지면 훤히 비추되 고요하다” -
제15화 생각과 말, 감정의 파도를 어찌할까
본문
다언다려(多言多慮)
전불상응(轉不相應)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된다.
강설
말이 많고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고락(苦樂)의 등차(等差)가 심하다는 뜻이다.
생각 하나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그런 생각에 의해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 또한 그 말에 따라 웃고 우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생각과 말이 많아지면 웃고 우는 고락(苦樂)도 그만큼 많아진다.
말이 많을수록, 생각이 많을수록 번뇌가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더더욱 도(道)와는 많이 멀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전불상응(轉不相應) 즉, 서로 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락(苦樂)의 과보(果報)가 없는 상태 즉, 성불(成佛)이나 해탈(解脫),
마음에 고통이 없는 적멸(寂滅)의 피안(彼岸)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말로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알지 못한다.
또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도 알 수 없으며,
사교입선(捨敎入禪) 가르침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따라서 분별이 끊어진 선(禪)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다언다려(多言多慮) 전불상응(轉不相應)’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어떻든 중요한 것은 눈과 귀로 느끼고 있는 현상에 대해,
좋고 싫은, 옳고 그른 분별심으로 바라보는 습(習)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
마음의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이 분별심이라면 거기에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라고 하는 파도가 크면 클수록 마음은 더욱 출렁이게 되어 괴롭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좋고 싫은 감정의 파도를 줄여야
마음의 바다가 잔잔하여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생각으로 나오는 감정과 말에서
묻어 나오는 감정을 놓고 또 놓고 방하착(放下着)해야 한다.
더불어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다.
송(頌)
생각이 많으면 생각으로 괴롭고
말이 많으면 말로써 힘들어진다.
다만 생각을 하되 고락 감정을 얹지 말고
말을 하되 분별 감정을 얹지 말라.
제16화 말하는 기술 생각하는 방법
본문
절언절려(絶言絶慮)
무처불통(無處不通)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어느 곳인들 통하지 않으리오.
강설
앞에 설명한 ‘다언다려(多言多慮) 전불상응(轉不相應)’ 과 반대되는 구절이다.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분별함이 없으므로
어느 때 어느 곳이든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다.
설명했듯이 말과 생각을 어떻게 끊을 수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본래 뜻은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라는 말과 생각은 얼마든지 하되,
즐겁고 괴로운 고락(苦樂)의 감정을 얹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감정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쨌거나 기쁘고 슬픈, 즐겁고 괴로운 감정이 들어가게 되면
말과 생각이 자유로울 수가 없으며 걸림이 많아진다.
같은 말이라도 고운 말이 있고 거친 말이 있으며 또 즐거운 생각과 괴로운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말과 생각에 감정이 들어 있으면 고락(苦樂)의 감정이 죽 끓듯이 마음을 평화롭게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시비(是非)와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로 인하여 늘 편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물리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할 때가 많고,
참선을 통하여 생각을 비우기 위해 치열하게 정진(精進)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말과 생각을 덜 하는 것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를 막을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말과 생각은 얼마든지 하되,
좋고 나쁜, 옳고 그른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더더욱 높은 단계는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라는 구별은 하면서도,
기분이 좋고 나쁜, 즐겁고 괴로운 직접적인 감정이 얹혀지지 않도록하는 것이
가장 수승(殊勝)한 방법이 되겠다.
그래서 말을 하되 무심하게 말을 하고,
생각을 하되 무심한 가운데 생각을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상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감정을 얹어서 듣지 않아야 하며,
상대의 생각을 감정을 얹어서 읽으면 안된다.
따라서 내가 말을 하거나 상대의 말을 듣거나, 내가 생각을 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읽을 때, 고락(苦樂)의 분별된 감정을 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생각을 읽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고락의 감정을 얹어서 선악(善惡) 시비(是非)를 하게 되면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글에 의지해서 이치로 해석하기를 말을 끊으면 말 길이 끊어지고,
생각을 끊으면 마음 갈 곳이 없어진다.
말 길이 끊어지면 고요하게 비추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지면 훤히 비추되 고요하다.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선(禪)은 한꺼번에 뚫리게 된다.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쉬고 쉬어서 입가에 백태가 끼고, 혀끝에 풀이 자라게 하라”고 했다.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다.
말과 생각에 감정을 얹지 않으려면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송(頌)
말을 하되 감정이 들어있지 않고
생각을 하되 감정을 얹지 말며,
말을 듣되 감정으로 듣지 말고
상대의 생각을 감정으로 읽지 말라.
[불교신문 3764호/2023년4월18일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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