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16>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분별심(分別心)이다 -

수선화17 2024. 3. 7. 22:25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16>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분별심(分別心)이다 -

 

제29화 걱정 근심 뿌리 자르는 법

본문

일공동양(一空同兩)

제함만상(齊含萬象)

하나의 공이 두 끝과 같으니,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두 머금는다.

 

강설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라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것과 바라는 욕심 이 둘을 양끝이라 한다.

걱정하는 마음이나 바라는 욕심 모두 나타났다 사라지는 공(空)에 지나지 않으니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 그렇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은 바라고 원하는 바를 미리 정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없이 원하는 것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 할 일을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 또한 미련이 없게 된다.

 

욕심을 부려 원하는 것을 정해 놓으면, 그때부터 걱정 근심과 고민이 생기게 된다.

세상의 이치나 마음의 업식(業識)은 인과(因果)로 묶여 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고심하게 되고, 얻은 만큼 잃게 되며, 좋은 만큼 싫은 것이 생기는 까닭이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의미 있는 일이든, 의미 없는 일이든, 혼자 하는 일이든,

수만 명이 하는 일이든, 모두가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를 벗어날 수 없으니,

성취하면 성취하는 대로 성취하지 않는 인과가 생기고,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인과(因果)가 생겨서,

슬픔과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되었건 저런 일이 되었건, 인과(因果)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인과 자체가 꿈같고, 환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아서,

결국은 모두 다 사라지고 마는 공(空)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걱정 근심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짐작하여 걱정하거나,

원하는 바를 내세워 지레 근심하는 이러한 마음을 내려놓고,

인연이 닿으면 닿는 대로 아무 의심없이 대하고,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고락(苦樂)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도록

인과(因果)와 공(空)에 대해 굳건한 신심(信心)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인연에 대해 좋고 싫은 분별(分別)의 감정을 일으키지 말고,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습관을 꾸준히 길러나가야 한다.

인과와 공에 대해 조금도 의심 없는 신심을 가지게 되면,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건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송(頌)

지금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있는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만큼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생기니,

바라는 것, 고락인과(苦樂因果) 마저 공(空)으로 돌아가리니…

 

제30화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

본문

불견정추(不見精)

영유편당(寧有偏黨)

세밀하고 거친 것을 나누어 보지 않는다면,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강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분별심(分別心)이다.

분별심으로 인해 생사(生死) 고락(苦樂)이 생기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 건강과 병마, 젊음과 늙음, 성공과 실패, 얻음과 잃음,

사랑과 증오, 호감과 비호감, 단명과 장수, 안락사와 급사, 행복과 불행,

지옥과 극락, 등등.. 모두가 분별(分別)된 마음에서 나오는 현상들이다.

 

인과(因果) 윤회(輪廻)란 바로,

이 두 가지 다른 성질의 관계가 하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을 취할 수 없으므로,

오랜 세월을 거치더라도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둘 모두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도 문제요, 좋지 않은 것도 문제이며,

성공하는 것도 문제요, 성공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둘 모두가 문제인 것은 바로, 분별하는 마음이 때문에 생기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나쁜 과보(果報)를 낳기 때문에 문제이고,

나쁜 것은 나쁜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문제이다.

태어남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죽고 사라지는 인과의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불교의 최종 목적은 성불(成佛)로서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부처란 바로 분별하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마음을 가리킨다.

 

불교의 중도(中道)사상으로 보자면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비(非)불교적인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시비(是非) 분별을 한다 하더라도,

고락(苦樂)의 감정이 움직이는 것은 막아야 한다.

눈으로, 귀로, 코로, 맛으로, 감촉으로, 생각으로,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색성향미촉법)이 작동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좋고 나쁜 감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란, 좋은 감정과 좋지 않은 감정으로 분별된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서로 인과(因果) 관계로 서로 엉키게 되어,

끝없이 윤회(輪廻)하며 고락(苦樂-즐거움과괴로움)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도 상대의 표정과 말, 손짓 발짓 등,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따라 오만가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며, 별별 감정이 들락날락하곤 한다.

 

좋은 말, 좋은 표정, 좋은 매너, 좋은 거래, 등,

좋고 나쁜 또는, 좋고 싫은 분별심(分別心)을 이미 정해 놓고,

좋은 것만 취하려는 분별(分別)심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좋은 감정만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분별은 그 자체로 두 가지 것이 나누어지게 됨으로,

설사 한쪽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결국 인과(因果)에 의해 다른 한쪽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해가 뜨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해가 지는 결과를 맞이 할 수밖에 없듯이,

밀물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썰물의 결과인 인과의 과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 고락(苦樂)의 감정도 이와같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불자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통하여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쁜 분별심을 절대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쁜 감정을 나누어서 분별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락(苦樂)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야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없을 것이다.

이것만은 반드시 명심하여 지켜나간다면,

8부 능선을 넘은 것과 같으므로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송(頌)

즐거움은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낳고

괴로움은 괴로움의 업습(業習)을 만든다.

즐거움과 괴로움 두 분별심(分別心)을 멸해야

중도심(中道心)되어 괴로움 없는 부처의 경지.

 

[불교신문 3772호/2023년6월13일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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