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화 목(木)장승이 노래하고 석녀(石女)가 춤을 춘다 -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제12화 목(木)장승이 노래하고 석녀(石女)가 춤을 춘다 -
환취기관목인문(喚取機關木人問)
구불시공조만성(求佛施功早晩成)
기관목인을 불러 붙들고 물어 보라.
부처 구하고 공 베품을 조만간 이루리로다.
[강의]
기관목인(機關木人)이란,
나무로 사람을 만들어 인형극 하듯이
나무 속에 들어가 나무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즉, 나무 장승을 붙들고 물어보라는 말이다.
나무 장승에게 물어서 부처 구하고 공 베품을 이룬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이 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에서는 부처를 이룬다고 공언하고 있다.
무생물인 나무 장승에게 물어서 부처를 이룬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앞 구절에서 약실무생무불생(若實無生無不生),
진실로 생겨남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음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생겨나지 않아서 말을 할 수가 없으나,
생겨나지 않음도 없다는 것은, 생겨난다는 말과 같은 말이므로,
나무 장승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목인방가 석녀기무(木人放歌 石女起舞)
“나무 장승이 노래 부르고 석녀(石女)가 춤을 추도다” 라는 말이 있다.
이해가 되지도 않고 말도 되지 않는 광경이기는 하나,
마음을 깨친 옛 조사스님들은 이와 비슷한 말씀을 많이 하고 있다.
즉, 깨친 마음으로 보면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된다.
이 세상의 모습은 내 마음이 그대로 비춰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마음에 없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다.
각자의 업(業)의 관념(觀念)에 따라
자기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친 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의 관점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즉, 생겨난 것은 인과(因果)로서 그저 움직이는 것일 뿐,
모두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며,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하므로,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집착하거나, 절대로 미련과 정(情)을 두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없는 것 또한 없고,
생겨나고 없는 것에 대한 분별심(分別心)이 없으니,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탐욕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야말로 희한한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바로 나무 장승이 말을 하고 돌 장승이 노래를 부르며,
석녀가 춤을 추는 광경이 예사롭게 벌어진다는 말이다.
이 정도 된다면,
“구불시공조만성(求佛施功早晩成 - 부처 구하고 공 베품이 이루어 지는 것)”,
이것이 무에 대수이겠는가.
즉, 부처를 이루는 성불(成佛)의 경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세상의 모든 모습은 생겨났다 사라지는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은 것이라 했다.
그러기에, 있는 그대로 보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과(因果) 인연으로서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은 더도 덜도, 이익도 손해도 없다.
그 어떤 것이 생겨날지 언정 저절로 생사(生死) 생멸(生滅)할 진덴,
이렇게 생겨나든 저렇게 생겨나든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무 장승이 노래를 하든 돌 석녀가 춤을 추든 이 또한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생사(生死)와 생멸(生滅), 고락(苦樂)과 시비(是非)의 분별(分別)을 떠난 이상,
육근(六根-눈, 귀, 코, 혀, 몸, 생각)이 청정하고
육식(六識-안, 이, 비, 설, 신, 의식)이 분명할지라,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집착과 미련과 정(情)이 없으니,
이러들 저런 들 모두가 없고 모두가 생(生)하며, 모두가 여여(如如)할지다.
쓸데 없는 헛된 일에 파묻혀서 기껏 살아가는 것에 급급한 마음이더라도,
가끔은 깨친 도인을 생각하며,
잠시라도 기도 참선 보시 정진할 수 있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질지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08호/2024년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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