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말이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이룬 경우가 많다” -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16>“말이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이룬 경우가 많다” -
제29화 눈먼 거북이(盲龜遇木)
아문흡사음감로(我聞恰似飮甘露)
쇄융돈입불사의(鎖融頓入不思議)
내가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서
쇳덩이가 녹듯이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도다
강의
지난 구절에서 상대가 나를 향해 비난과 비방, 욕을 하더라도
그 말에 끄달리지 않는 무분별심(無分別心)을 갖는 것이 곧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였다.
욕을 한 상대는 그 사람의 인과(因果) 업(業)에 의해 과보(果報)를 받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옛 조사스님들은 말이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이룬 경우가 많다.
어떤 소리든 좋은 소리, 싫은 소리 등의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고
그냥 소리로서 듣는 것이다.
더 나가서 마치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이
한량없는 청량감이라면 쇳덩이가 녹아 내리는듯 깨친 마음의 모습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깨침과 깨달음이란,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서, 좋고 나쁜, 나고 죽는, 있고 없음 등의
상대적인 분별심(分別心)이 없는 진공(眞空) 상태의 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때와 장소가 따로 없고,
무엇을 보든, 무슨 소리를 듣든, 어떤 냄새를 맡든,
어떤 맛을 보든, 무엇이 몸에 닿든, 무슨 생각을 하든,
이러한 육근(六根 -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좋고 싫은 고락(苦樂)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늘 상락아정(常樂我淨)이요,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이다.
마음과 현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양과 모습,
그리고 어떠한 움직임에 있어서도,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작동할 뿐이다.
또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도 생겨나는 연기(緣起)에 의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반복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니,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요, 간섭하거나 따질 일도 아니니,
그저 그렇게 그러려니 바라볼 뿐이다.
탐하면 탐하는 만큼 괴로운 과보(果報)를 받고,
성을 내면 성을 내는 만큼 괴로운 과보(果報)를 받으며,
이런 궁리 저런 잔머리 굴려 본들,
딱 그만큼의 괴로운 과보(果報)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부처님과 하느님이라도 고락(苦樂)의 인과(因果)와
생사(生死) 생멸(生滅)의 과보(果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이 실제로 인과(因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과연 있을까?
잡아함 <맹구경(盲龜經)>에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넓은 바다에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번 물위로 올라와
구멍 난 나무판자를 만나 목을 넣고 쉴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겠는가?
이 말은 요즘, 세상에 태어나기가 이처럼 어렵고,
더구나 남자로 태어나기가 이처럼 어려우며, 불법 만나기가 이처럼 어렵다.
더더구나 마음을 깨치는 일 또한 이처럼 어렵다. 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조건을 겨우 채웠는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놈의 욕심 때문에 매일매일 걱정 근심은 끊이질 않고,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잔머리 굴리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볼까하며 내 식구, 내 가족, 내 편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분별심과 집착심은 날로 더해지고 그 업(業)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이 쌓여진다.
이 과보(果報)를 과연 어찌할 것인가.
우선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지침으로는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을 줄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염불, 독경, 간경, 참배, 정근, 다라니 등 어떤 기도를 하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심(無心)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텅텅 비워야 한다.
참선 중에 가장 쉬운 것은 좌선(坐禪)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정좌하고 앉아서 화두를 챙기는 습(習)을 들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움직이면서도 화두를 챙길 수 있는 숙련이 되어야 한다.
보시(布施)는 자기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번뇌 망상을 없애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요령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아상(我相)이 있는 한 마음을 깨치기는 커녕
업장(業障) 소멸이 되지 않아 괴로운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이 같은 기본적인 마음 비움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정진이다.
정진의 끝에는 반드시 깨달음이 온다.
[불교신문 3817호/2024년4월23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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