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26> “인과를 잊지 말고 분별심을 갖지 않도록 정진” -

수선화17 2024. 8. 19. 21:16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26> “인과를 잊지 말고 분별심을 갖지 않도록 정진” -

 

제49화 이도저도 안되면

기능해차여의주(旣能解此如意珠)

자리이타종불갈(自利利他終不竭)

이미 이 여의주를 능히 알았으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다

 

강의

여의주(如意珠)란 글자 그대로 뜻대로 다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슬은 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뜻대로 된다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번 더 잘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인과(因果)에 걸리는 말이 되고 만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것은 곧 인과(因果)의 이치로 보아

이 또한 분별심(分別心)이므로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 과보(果報)가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여의주(如意珠)라는 의미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고 못 되고라는 두가지 분별(分別)을 모두 떠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바로 중도심(中道心)을 가리킨다.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나와 남이 모두 이롭다는 뜻인데,

이롭다는 것 또한 인과(因果)에 걸리는 말로서,

이롭지 않다는 과보(果報)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이롭다는 의미는,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다.

여의주와 마찬가지로 이롭고 이롭지 않고를 모두 떠나

분별(分別)이 없는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자리(自利)는 내가 분별을 떠나 중도(中道)의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인과(因果)의 괴로움이 없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왜 남까지 이롭다는 것일까?

 

내가 부처가 되면 모두가 부처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처와 중생, 선(善)과 악(惡), 고(苦)와 락(樂),

호(好)와 불호(不好), 생(生)과 사(死), 정(正)과 부(否), 등

두 가지 분별(分別)로 보지 않으니 당연히 중생이 따로 없는 것이다.

남이 이롭다는 뜻은 바로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하나는, 부처님이나 깨침을 얻은 보살과 역대 조사(祖師)들을 거울삼아

많은 중생이 마음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인연 자체가 이로운 것이다.

깨친 이를 보고 내가 깨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그 자체가 곧, 이롭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이유는 좋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라고 하는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것도 생기지 않는다.

해가 뜨는 이유는 해가 지기 때문이고, 해가 지는 이유는 해가 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과(因果)이다.

 

눈물 흘리는 일이 생기는 이유는 웃고 기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불행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 어떤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한가? 불행(不幸)을 경험하여 불행이 무엇인 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불행한가? 행복이 무엇인 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 일이 잘 풀리지 않는가? 일이 잘 풀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좋아하는 사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보살, 마음을 깨친 이는 이 두 가지 분별심(分別心)이 없다.

좋고 싫은 고락(苦樂)이 없고, 옳고 그른 시비심(是非心)이 없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러면 불행을 경험하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럼 미운 사람을 만나라.

미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가? 그럼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

 

기억을 살려 자세히 생각해 보라.

사람이란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유리한 것만 취하려 한다.

만약 이런 요행을 바란다면 도둑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참으로 나쁜 사람이다. 공짜가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건강했으면 병이 나는 것이 당연하고, 젊음이 있었다면 늙어야 마땅하고,

좋았으면 나빠야 하고, 태어났으니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됨이 공일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계산을 잘못했거나 아니면 전생(前生)과 금생(今生)을 다 따져보지 않아서이다.

인과(因果) 업(業)의 모습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유리하고 좋은 것만 취하려거나

많이만 가지려고 하니 그에 따른 고업(苦業)의 과보(果報)를 어찌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좋고 나쁜 고락(苦樂)을 분별하지 말라.

그래도 잘 안되면 좋건 싫건 무조건 받아들여라.

항상 자업자득(自業自得)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좋은 것을 취하려 할 때 나쁜 과보(果報)를 생각하라.

그러므로 좋은 것을 좋다는 분별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것 또한 나쁘다고 분별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과(因果)를 잊지 말고 분별심을 갖지 않도록 항상 정진(精進)하라.

이도 저도 잘 안된다 싶으면 기도와 보시를 행하라.

무심(無心)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인과를 믿고 다음 일을 걱정하지 말라.

지금 이순간, 지금 이순간이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28호/2024년7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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