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2화 분별없는 마음, 해보지도 않고 착각하지 말라 -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제72화 분별없는 마음, 해보지도 않고 착각하지 말라 -
일지구족일체지(一地具足一切地)
비색비심비행업(非色非心非行業)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강의
중생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모두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것이 착각이요, 어떻고 저떻고 하는 모든 것이 착각이다.
첫째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한들 모든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며,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 환 물거품 그림자)하니,
결국 남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착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좋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이 있으니 좋은 것이 되고,
좋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 있으니 좋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좋은 것 한번은 좋지 않은 것 한번을 가져오고,
좋지 않은 것 한번은 좋은 것 한번을 가져오니, 결국 같다.
그러니 좋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든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니, 따라서 이를 분별심이라 했으므로,
좋고 나쁜 분별심만 없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수 없고,
더 이상의 걱정 근심,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한 지위(地位)라는 것은 바로 분별심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니,
모든 지위에 있어서 일체의 차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색(色)의 물질도 분별하지 않게 되고,
마음도 분별함이 없으며,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도 분별이 없어서,
이를 완벽하게 갖춘 것이라 하여 구족(具足)이라 한다.
누가 뭐하고 해도 좋다 나쁘다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니,
욕이 되었건 칭찬이 되었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몸을 다쳐서 몹시 아파도 고통을 느끼는 것일 뿐,
좋다 싫다는 분별의 마음이 없으면 이 또한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싫다는 분별의 마음이 없으니,
눈치를 보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 또한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이런 행동을 하면 잘 될 것이고,
저런 행동을 하면 잘못될 것이다 라는 분별심이 없으니,
잘 되고 잘못되는 일 자체가 없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 것이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 생각을 잘하고 못하고,
행동을 잘하고 못하고의 분별된 마음이 없으니,
말에 의한 잘잘못이 없고, 생각에 의한 잘잘못이 없으며,
행동에 의한 잘잘못이 없게 된다.
만약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면 바로 인과로 이어져서,
잘하고 잘못하고 의 분별심으로 영원히 이어지게 될 것이니,
좋고 나쁜, 잘되고 못되는,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두 분별심 역시 엎치락뒤치락하며 영원히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행복이 어디에 붙을 것이며, 불행이 어디에 붙을 것인가.
좋은 것이 어디에 있으며 좋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즐거움이 어디에 있을 것이며, 즐겁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따라서 지위(地位)가 무슨 말이며, 색(色)과 색 아닌 것이 무엇이며,
마음이 어디에 있고, 움직이는 행업(行業)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오늘의 구절은 바로 이러한 내용과 뜻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알아 듣기 어려운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같은 무분별심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도 없겠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보지도 않고 미리 착각하지는 말라.
분별없는 마음을 이룰 수 없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허언(虛言)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불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성립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 조사들은 이 같은 마음을 깨쳐왔다.
모든 인간과 중생은 이같은 분별심에 의해, 죽고 살고, 웃고 울며, 좋았다 나빴다,
오락가락, 있다 없다, 지지고 볶고, 시간과 공간을 만들며 육도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때문에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게 아니며,
그렇게 그렇게 살고 지고 할 것이나,
부처님은 바로 이것을 지적하러 이 땅에 출현하신 것이니,
그렇게 살던지 저렇게 살던지,
이는 순전히 스스로의 몫인 것만을 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39호/2024년10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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