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재(齋), 스님들에 올린 공양에서 망자 위한 의식으로 -
[미등스님의 이야기로 푸는 의례문화]
- <3> 재(齋), '스님들에 올린 공양'에서 '망자 위한 의식'으로 -
"스님 재와 제
둘중에 어느것이 맞나요?"
"오늘날 '재'는 대부분
영가천도 목적의 의례 의식"
절에서 ‘재(齋)’ 올린다는 말이 있다.
절에 갈 때는 ‘목욕재계(齋戒)’하고 간다는 말도 있다.
‘○○재일’, ‘○○재자’ 등 ‘재’라는 말도 흔하게 쓰인다.
오늘날 불교에서의 ‘재’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
망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 등에 두루 쓰이다보니,
‘재’의 의미가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가끔 “○○재와 ○○제 둘 중에 어느 것이 맞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다.
‘재’자는 보리 이삭이 가지런하게 서 있는 모습과 신(示)이 합쳐진 글자로,
신 앞에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신께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치르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깨끗이 하고
음식(공양물)을 정결하게 하여 정중하고 공손함을 표시하는 것을 ‘재’라고 한다.
이에 비해 ‘제(祭)’자는 육(肉) 달월과 손 수(手)와 신(示)이 합쳐진 글자로
신에게 고기와 춤을 올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하늘이나 신에게 올리는 제사에 희생(犧牲)과 춤이 수반되는 것을 ‘제’라고 한다.
이렇듯 의례를 행하는 자의 정결을 중시하는 것이 ‘재’요,
의례의 대상인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제’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재’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과 후로 의미가 차이를 보인다.
먼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재’가 고유명사로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재’는 방사(房舍)로서 공부하는 곳,
서재, 문인이 거처하는 곳의 의미로 사용됐다.
이러한 의미의 흔적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궁궐에 있는 서재나 독서당 같은 당우에
‘○○재’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조선 후기로 가면서 후궁의 처소에 ‘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궁궐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를 갖춘 대가댁에서도
글공부하는 곳의 당우를 ‘○○재’라 칭하였으며,
서당이나 향교 등 학인들이 모여 공부하는 공간에도
‘재’라는 용어가 사용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둘째, 몸과 마음을 근신하고 깨끗이 한다는 ‘계결(戒潔)’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계결’을 ‘청결(淸潔)’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불교가 전래 된 후에 불교에서의 ‘재’의 의미로 연결된다.
다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 된 이후에는 ‘재’의 의미는 더욱 다양해진다.
이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사양하다, 참다’는 뜻을 지닌 ‘금식(禁食)’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upos adha’에서 온 말로서 정화의 성격을 지닌 ‘금식’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는 ‘오신채와 10종의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때가 아닌 때 먹지 않는다’, ‘오후에 먹지 않는다’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법원주림>의 ‘수재편’과 ‘파재편’에서도 ‘재’를 때아닌 때 먹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 ‘식사하다’는 뜻을 지닌 ‘반사(飯食)’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승전>이나 <입당구법순례기>에 등장하는 ‘재’는 대부분 ‘반사’의 의미로 쓰였다.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뜻하는 ‘재’는 스님들께 식사를 공양하는 의식,
또는 그와 같은 의식을 중심으로 한 법회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고려사>에서 스님들께 공양을 베푸는 의식을 ‘반승(飯僧)’
또는 ‘재승(齋僧)이라 하였는데 이 용어 역시 같은 의미로 ‘재’를 사용한 예라 하겠다.
셋째, ‘소식(素食)’으로 소박한 채소 음식을 의미하는데,
중국 당대(唐代) 이후에 쓰여진 문헌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넷째, ‘법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즉 수륙재, 예수재, 영산재 등의 법회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수륙재의 또 다른 명칭인 ‘무차대회’가
‘무차대재’로도 불리웠던 것을 들 수 있다.
다섯째, ‘의식’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석문의범> ‘재대령’편에 ‘대령정의’와 ‘사명일대령’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서 ‘재대령’은 대령의식의 내용이다.
이 사례가 ‘의식’의 의미로 ‘재’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의식이 펼쳐지는 공간,
즉 의식도량을 ‘재장(齋場)’으로 표현한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금기 또는 스님들께 올리는 공양의 의미로 사용되던
‘재’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양 의식,
사찰에서 행하는 일반적인 의식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과 사찰에서 행하는 의식 등
폭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재회(齋會)’라는 용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 재와 관련된 용어를 통해 ‘재’의 의미를 살펴보자.
주로 마을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재전(齋錢)’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초상이 난 집에 상비(喪費)로 보내던 돈으로 일종의 부의금을 의미하였다.
‘재전’이라는 말은 불교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천도재나 49재 때 영단에 놓인 돈(불전)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한편, 스님들 사이에 쓰는 ‘재받이’라는 말이 있다.
‘재받이’는 ‘재를 받아 지낸다’라는 말로 주로 ‘재받이 중’이라는 표현에 쓰인다.
이는 불교 의례 의식을 집전하는 전문가를 홀대하는 표현이다.
염불하는 것을 하근기 수행이라고 인식했던 선불교의 입장에서 나온 말로
2000년대 이전에 주로 사용되었다.
전문가를 지칭하는 말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스님들 사이에서
‘재받이를 잘해야 한다’ ‘재 봐드리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재’는 49재나 천도재를 말하며 문맥적으로는 재의 뒷바라지를 의미한다.
‘재받이를 잘해야 한다’는 말은 재를 받았을 때는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재 봐드리다’는 말도 2000년대 이전에 쓰였던 말이다.
주로 비구니스님이 주석하는 사찰에서는 재가 들어오면 원근의 권속스님,
도반스님 등 인연이 있는 스님들이 모여 공양물 준비부터 장엄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왔던 풍습에서 ‘재 봐드리다’는 말이 쓰였다.
비유컨대 마을의 품앗이와 비슷하게 이해하면 될 듯싶다.
이렇듯 ‘재전’ ‘재받이’ ‘재받이를 잘해야 한다’ ‘재 봐드리다’ 등에서
‘재’는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례 의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영향인지 오늘날 ‘재’는 대부분 영가천도를 목적으로 하는 의례 의식을 말한다.
요즘에도 사찰에 치성을 드리러 갈 때나,
특별한 일을 앞두고는 ‘목욕재계한다’는 말을 한다.
이때의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함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재계’의 ‘재’는 정오가 지나서는 먹지 않는 과중불식(過中不食)을 말하는 것이며,
‘계’는 악을 그쳐서 나쁜 것을 막는다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을 말한다.
불교중앙박물관장·묘적사 주지
[불교신문 3755호/2023년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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