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

- 10. 중생을 위해 이룬 극락 -

수선화17 2025. 2. 17. 23:39

[미탄 스님의 아미타경]

- 10. 중생을 위해 이룬 극락 -

 

미타 본원력, 중생 내버려두지 않아

극락 장엄은 아미타불 위신력

보는 것만으로 괴로움 벗어나

중생에게 주는 안락 의심말고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 다잡길

 

‘아미타경’에서 서술하는 극락의 장엄은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위신력(威神力)과 본원력(本願力) 그리고 만족원(滿足願),

명료원(明了願), 견고원(堅固願), 구경원(究竟願) 덕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위신력과 본원력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의 위신력은 끝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한다”고 경전에 나와 있습니다.

“극락의 성문과 보살의 신통과 지혜는 자재하여 모든 세계를 손바닥에

올려둘 수도 있다”는 ‘무량수경’의 비유로 유추해 보건대

아미타불의 위신력은 욕계에 사는 중생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육신통(六神通)만 해도 범부가 얻기 매우 어려운 것인데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극락 장엄은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요?

그러니 극락 장엄을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해도 세 가지 법인(法忍)을 얻어

괴로움을 조금도 겪지 않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본원력은 법장보살이 세운 서원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세친은 ‘원생게’ 19행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만나 중생이 제도 되지 않은 채로 헛되이 지나가지

않음을 관찰한다면 빠르게 공덕의 큰 보배 바다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되도다.”

 

법장보살의 52가지 본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생의 근기와 업력을 상관하지 않고

모두 제도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데, 이를 세친이 찬탄한 것입니다.

불교에는 ‘선지식 발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지식을 만나

해탈의 길에 이르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필자는 선지식 만나기가 어렵다고 풀이 죽어있던 때에

‘원생게’ 19행을 만나고서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에서 풀려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만나면 절대로 허투루 중생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 마음이 놓였습니다.

 

부끄럽게도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는 줄 모르고,

중생이 스스로 제도한다고 자만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제야 삼계(三界)의 스승이신 부처님께 우러러 귀의하는 마음이

이 어리석은 중생에게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본원력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해탈시키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왕생하여 아미타불의 위신력과 본원력으로 이루어진

극락 장엄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공덕은 만족되고,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다.

 

신라의 경흥(憬興) 스님은 ‘무량수경연의술문찬’에서

“타방 보살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들으면 삼법인(三法忍)을 얻는데,

하물며 아미타 불국토에 왕생한 중생이 인(忍)을 얻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이 본원의 성질을 해석합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족원이라 한 것은 본원에 아미타불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중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명료원이라 한 것은 중생을 구한다는 그 본원이 헛되지 않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견고원이라 한 것은 그 어떤 조건[緣]도 본원을 깨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경원이라 한 것은 본원은 반드시 그 결과를 이루어 모든 중생을 극락에 왕생하게 합니다.

이러한 본원의 성격 때문에 왕생한 사람은 모두 삼법인(三法忍)을 이루게 됩니다.

 

법장보살은 서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정각(正覺)을 이루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미타경’에서 이미 이 보살이 아미타불이 되어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극락을 이루고 현재 설법하신다고 했으니 모든 서원 또한 이뤄진 셈입니다.

본원력 중 만족원을 생각하면 모든 중생은

아미타불께 제도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무량수경’에는 “극락에 왕생하기는 쉬운 데 가려는 사람이 없구나.

그 국토는 오지 못하도록 거부하거나 멀어지지 않으므로

아미타불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저절로 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경험한 적 없다고 극락 장엄이 중생에게 주는 안락을 의심하지 말고

‘아미타경’에서 설하는 의보를 떠올리면서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미탄 스님 mitankha@gmail.com

[1753호 / 2024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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