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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2. 묘(妙)안에 숨은 실상 -

by 수선화17 2023. 10. 7.

(고담혜민 스님의 법화경 공부)

- 2. 묘(妙)안에 숨은 실상 -

 

‘묘’(妙)는 나와 너 따로 없는 불성의 성품

고요 넘어 모든 것을 창조해서

세상에 내놓는 생명보고가 부처

자비한 힘과 주객이 따로 없는

진리가 하나임을 묘에서 드러내

 

이 세상 모든 글은 이미 정해진 하나의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경전과 같이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글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왜냐하면 경전에는 한 시대 상황에만 적용되는 정보를 알려주려는 것이 아닌,

시공을 뛰어 넘어선 범우주적 진리를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읽는 사람의 지성과 삶의 경험, 진리에 대한 통찰력이

얼마나 깊은가에 따라 같은 글이 여러 방식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같은 글을 20년 전에 읽었을 때와

지금 읽었을 때의 이해와 감동은 많이 차이가 난다.

왜냐면 글이 변한 것이 아니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펼쳐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독자 분들과 나누려고 한다.

때로는 스승님이신 설송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선배 불자님들이 과거에 어떻게 해석해 놓았는지를 참고하기도 하겠지만,

상당 부분은 내 나름의 해석 방식이 될 것이다.

 

경전은 비유와 은유를 들어 진리를 상징적으로 종종 표현한다.

다시 말하지만, 상징적 표현은 단일한 해석이 아닌,

읽는 사람의 능동적 의미 부여를 통해 지금 여기서 그 경전이 다시 살아난다.

 

먼저 경전의 이름을 왜 ‘묘법연화경’이라고 정했을까 깊이 들어가 본다.

제목은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저자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책 전체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농축해서 정성을 다해 어렵게 뽑아낸 단어가 제목이 된다.

 

궁극적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경전의 경우에는 제목만 제대로 이해해도

그 경전 전체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다.

그러기에 왜 경전 제목을 ‘묘법연화경’이라고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면 경전안 내용 가운데 부처님께서 연꽃에 비유해서

진리를 말씀하시는 대목이 아예 없기에 그렇다.

 

예를 들어 ‘묘법연화경’ 안에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이나

장자궁자(長者窮者)와 같은 비유는 있어도 연꽃에 관한 비유는 없다.

그렇다면 경전 전체를 두루 칭하는 부처님의 가장 깊고도 높은 법을 왜

‘묘법연화’라는 네 글자로 정해서 넣었을까?

 

오늘은 먼저 묘(妙)라는 의미를 새겨본다.

우리가 평소에 묘하다고 할 때는 잘 알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누구라도 봐서 바로 아는 일이라면 자명하다고 이야기하지 오묘하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없다고 해서 그 일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는 또 아니다.

있긴 있는데 잘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묘라는 단어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불성(佛性)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는 아는 대상(object)과

아는 주체(subject)가 분리가 되어야만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묘의 세계로 들어가면 아는 자와 아는 대상이 하나로 경험되기에 오직 모른다는 것만 안다.

이것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세상이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진실을 묘라는 한 글자로 비밀스럽게 드러낸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보자.

묘를 파자 해 보면 여성을 지칭하는 계집 녀(女)와 적을 소(少)로 나뉜다.

적을 소는 너무도 극묘하게 작아서 대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상(無相)의 진리 세계를 이야기 한다면,

여성을 지칭하는 계집녀는 무슨 깊은 뜻을 담으려 했을까?

그것은 바로 불성 안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잉태하는 창조력과

생명력이 가득 담겨 있다는 진리를 또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진공의 고요한 상태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밖으로 모든 것을 창조해서 끝임 없이 내어 놓는 생명력의 보고가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결국 살아있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자비(女)한 힘과

주객이 따로 없는 진리(少)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을 묘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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