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제18화 참으로 신통묘용이라. -
육반신용공불공(六般神用空不空)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음이요
한 덩이 둥근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강의]
육반신용(六般神用)이란, 여섯가지 신통(神通)묘용(妙用)을 말한다.
즉, 여섯가지 신통은 ①천안통(天眼通), ②천이통(天耳通), ③타심통(他心通),
④숙명통(宿命通), ⑤신족통(神足通), ⑥누진통(漏盡通)이다.
①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없고, ②귀로 듣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③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④과거 전생의 일을 훤히 볼 수 있으며,
⑤마음대로 날아 갈 수 있고, ⑥번뇌 망상이 끊어져 모르는 것이 없음이다.
수행을 통해 좋고 싫음의 고락(苦樂)과,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
집착과 분별(分別)을 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되니,
이 때 비로소 육신통(六神通)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공(空)한 도리이므로 신통(神通)을 굳이 쓸 이유가 없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육반신통의 뜻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몸으로 부딪치고 머리로 생각 함인데,
이 여섯 가지의 것들은 모두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물거품 같은 것이어서
공(空)하다고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결국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니,
결국 공(空)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나,
그래서 분별 작용없이 분명하게 공을 똑바로 보게 되므로,
이같은 공(空)이야 말로 진공(眞空)이라 하고 묘용(妙用)이라 하니,
그냥 생각하는 가공(假空)이 아니고, 진짜 공(空)이라 할 것임으로,
다시 공이 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좀 난해한 것 같지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눈으로 보는 것도 귀로 듣는 것도,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데 있어서, 분별심(分別心)과 집착을 없애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 또한 없어지니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을 해도 편안하고 말을 해도 편안하고 움직여도 편안한 상태를 이룬 사람은
불법을 닦는 수행자 밖에 없으니, 존귀하고 희안한 일이라 하겠다.
또, 한줄기 뚜렷한 빛이란, 분별(分別)이 사라진 자성과 불성으로써,
눈으로 봐도 분별함이 없고, 귀로 들어도 분별심(分別心)이 없으며,
냄새를 맡던, 맛을 보던, 몸으로 부딪치던, 생각을 하던,
그 어떤 것을 사용하더라도 분별(分別)하지 않으니,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닌 것이 된다.
한마디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이다.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부딪치고,
생각하는 육식(六識)을 하더라도 좋거나 싫은 고락(苦樂)과,
옳거나 그른 시비, 고운 정(情) 미운 정의 집착과 분별 작용이 없으니,
색(色-물질)이면서 색(色)이 아니고, 색이 아니면서 색이 되는 것이다.
매사를 이와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인바,
이래서 좋고 저래서 싫으며, 이래서 옳고 저래서 그른 분별심(分別心)을 가지게 되면,
좋고 싫은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발생하게 되니,
실재의 좋고 싫은 현상에 끄달리기 이전에,
내 마음에서부터 고락(苦樂) 시비(是非)의 업(業)을 잘 살펴서
그 업장(業障)을 참회하며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감정이 먼저 앞서지 말고,
항상 그 어떤 일이든 초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때부터 노심초사, 집착을 하게 되니,
마음이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하거나, 아쉽거나, 외롭거나, 속상하거나, 기분이 몹시 나쁘거나,
상대와 시비를 하거나, 가족간에 문제가 있거나, 사람들과의 부딪침이 있거나,
실패하거나, 서럽거나, 건강하지 않거나, 낙방을 하거나, 등등의 일을 당할 때에는
항상 인과(因果)의 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유 없는 무덤도 없다.
아닐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이와 같이 인과(因果)는 반드시 있을뿐더러, 한치의 오차도 없으니,
탐내고, 성내고, 망상하는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을 가지게 되면,
그에 따른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반드시 생기게 된다.
하여, 이를 방지하려면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으니,
다른 것 다 못하더라도 이를 간과하지 말지어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11호/2024년3월12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20화 왜 포기해야 하나 - (41) | 2024.06.12 |
---|---|
- <11>모든 일에 때가 있으니, 지나치게 앞서 거스르지 말라 - (41) | 2024.06.10 |
- <10> “지금 보고 듣고 대하고 있는 허깨비에 속지 말라” - (32) | 2024.06.06 |
- 제16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 (36) | 2024.06.03 |
- <9>“근심 접고 집착 않으며 편안한 마음 받아들여라” - (33) | 2024.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