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34> “싫은 감정 생기면 나의 고락 인과 업이구나…” -
제65화 마음을 편히 한다는 것
비단능최외도심(非但能催外道心)
조증락각천마담(早曾落却天魔膽)
외도의 마음을 꺾을 뿐만 아니요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렸다.
강의
외도(外道)는 인과와 인과를 벗어난 진공(眞空)과 금강(金剛)을 알지 못하고,
유위(有爲, 감지되는 것)의 존재를 선택하여 분별을 믿는 부류를 말한다.
남의 종교를 비교하기는 매우 유감스러우나,
유일신을 믿는다거나, 이와 유사한 것을 절대시하여 믿는 부류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부처마저 벗어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니
즉, 부처라고 하면 이미 중생이 생겨 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와 중생 모두를 벗어나야 이름하여 진정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살았다고 하는 것은 곧 죽음이 맞이하게 되고,
즐겁다고 하는 것은 괴롭다는 전제가 되어야 즐거움이 되는 것이므로,
즐거움은 곧 괴로움의 인과를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즐거움이 결국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전지전능하지 못한 신이 아닌 것이 상대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
이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종교라 할 수 없는 고로, 이를 외도라 하는 것이다.
천마(天魔)라는 것은 천상의 마구니를 가리킨다.
지옥의 마음을 벗어난 때와 장소를 천상이라 말하는데,
인과에 따라 마음이 비교적 즐거운 시절 인연의 때를 만났으니,
이를 천상이라는 공간 장소에서 즐거움을 맛본다는 의미이다.
이를 테면 육도의 세계 가운데, 천상, 인간, 수라의 세계를 삼선도(三善道)라 하여
비교적 즐겁고 좋은 마음이 모인 반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에서는
비교적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곳을 말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 고락의 인과에 따라 비교적 가장 즐겁고 좋은 때와 장소를 천상이라 한다.
천상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인과를 믿지 않으며,
즐거움에 도취되어 즐거운 인과의 시간을 모두 허비한다면,
그 과보로 인해 삼악도로 떨어지고 말 것이니,
이를 천상의 마구니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친 대장부는 지혜의 칼과 금강의 불꽃을 뿜어서,
외도의 헛된 마음을 꺾어 잠재우고,
천상 마구니의 달콤한 간담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종교를 믿는 사람은 대단히 많다.
왜 종교를 믿느냐 하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마음의 모양이란 이것과 저것 즉,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 크게 두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안한 마음은 불편한 마음의 인과이고, 불편한 마음은 편안한 마음의 인과이다.
따라서 이 둘의 마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어느 한쪽만을 취하거나 버릴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종교는 이러한 고락의 인과에 걸리게 되므로,
편안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불편한 과보가 똑같이 생겨나게 되니,
이로써 종교라고 하는 것 또한, 인과의 과보에 따라 고통과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거기에 비해 불법(佛法)이란 궁극적으로, 편안함과 불편함을 모두 여의어
편안함과 불편함 모두가 없는 중도의 여여함을 추구하는 종교이므로,
이야말로 완벽한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것과 저것
즉,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과, 괴롭고 슬프고 불행한 두 마음을 분별하여,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것 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불교든 다른 종교든 특별히 따로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
분별심으로서 좋은 것만을 차지하려는 마음이라면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
어떤 종교든 인과의 과보에 걸려 괴로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백 번 귀가 따갑게 설명했으니,
진정한 불자라면 이제부터는 제발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지건,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는 분별심을 내지 말고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미련과 집착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인과요 저렇게 살아도 인과이니,
인과는 한치 오차없이 오고 가는 것이므로,
득실에 대해 한 점의 의심도 할 필요가 없으니,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거부하거나 불편해 하지 말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습을 길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이것이 신심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행이라 할 것이니,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바로 분별없는 마음이 바탕되어야 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36호/2024년9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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