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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31. 사마 본생① (‘본생경’ 540번) -

by 수선화17 2023. 9. 11.

(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 31. 사마 본생① (‘본생경’ 540번) -

 

“낳아준 부모의 하늘 같은 은혜 어찌 잊으랴”

가난한 부모 봉양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비구에게 들려준 전생담

재산 버리고 출가한 두쿠라·파리카 부부 아들 사마는 부처님 전생

눈먼 부모 정성으로 보살펴…부모 봉양, 부처님 봉양과 다르지 않아'

 

히말라야 산록이 남쪽으로 내려와 평원을 이룬 카필라성에서 태어나신 부처님께서는

고대 인도문화의 사문(沙門) 전통에 따라 가족의 품을 떠나 출가하여

진리를 깨달으셨다고 전해지지만,

과거생에도 항상 가족을 떠나기만 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본생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부모님을 부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마 본생담이다.

사마 본생담이 기원 전후에 만들어진 산치 대탑 동문의 가로들보에 큰 부조로 조각되었고

서문 기둥에도 부조된 것을 보면, 이 이야기는 일찍부터 전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아잔타 석굴의 17굴에도 벽화로 그려졌다.

 

사마 본생은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모를 부양하는 어떤 비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사위성에 일억 팔천만의 재산을 지닌 부호의 외아들이 있었다.

그는 일주일간 단식을 하고 부모의 허락을 얻어 마침내 출가하였다.

그 비구가 집을 나와 수행에 전념하는 17년 동안 그의 부모님은 자꾸 가난해져서

집까지 팔아치우고 불쌍한 상태가 되어 헌 누더기를 입고 쪽박을 들고 거지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 비구는 뒤늦게 양친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 걸식을 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도반들은 탁발한 음식을 재가자에게 준다고 이 비구를 비난하고, 부처님께 고해바쳤다.

부처님께서는 이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였다.

“잘했다. 잘했다. 잘했다.

너는 내가 밟고 온 길에 서 있다.

나는 전생에 바른 행을 행하면서 양친을 부양한 일이 있었다”고 칭찬하고 다음 이야기를 설하셨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사냥을 업으로 하는 두 마을에서 각각 태어난 청년 두쿠라와

처녀 파리카는 두 마을의 어른들이 합의하여 결혼하였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서로 “만일 음사(淫事)를 바라거든 다른 사람에게 가시오.

나는 음사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습니다”하는 말을 서로 사람을 보내 주고받았다.

결혼한 후에도 따로따로 살았으며, 어류도 수류도 죽이지 않고 잡아 온 고기를 팔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추방당하였다.

 

그들은 갠지스강을 따라 히말라야의 산골에 이르러

갠지스강에서 갈라지는 미가삼마타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그 강가의 숲속에서 붉은 나무껍질 옷을 입고 영양의 껍질을 어깨에 걸치고

나계를 쪽지고 각자의 초막에서 사문의 법을 수행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두쿠라 부부의 눈이 멀 것을 예견한 제석천이 내려와 자식을 가질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두쿠라는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출가 전에 집에 있으면서도 구더기가 끓는 뒷간처럼 세간법을 싫어하였다.

그런데 출가한 지금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제석천이 “그렇다면 파리카에게 월경이 있을 때 그 배꼽을 손으로 문지를 수 있겠느냐”고 되묻자,

두쿠라가 그것은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하여 두쿠라가 파리카의 배꼽을 손으로 문질러 아이를 갖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사마는 황금빛이 나서 수반나사마(Suvaṇṇasāma)라고도 하는데,

킨나라 여신들이 유모 역할을 해 주었다.

사마가 자라서 16세 소년이 되었을 때,

두쿠라와 파리카가 숲속에 나가 갖가지 과일을 가지고 저녁에 돌아올 때 뇌우(雷雨)를 만나

어느 나무 밑으로 들어가 개밋둑 위에 서 있었다.

그때 몸에서 땀 한 방울이 떨어져 땅에 있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있던 독사의 콧구멍에 떨어졌다.

화가 난 독사는 독기를 내뿜고 그로 인해 두 사람 다 눈이 멀게 되었다.

 

눈먼 부부의 귀가 시간이 늦자 사마는 마중을 나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그들은 “사마야, 여기는 위험하다. 여기 와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사마는 “그러면 이것을 잡고 오십시오”하면서 긴 막대를 내밀었다.

양친은 그 막대 끝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마는 무엇 때문에 눈이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양친은 비가 와서 나무 밑 개밋둑에 서 있었는데 그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사마는 거기에 독사가 있었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리고 눈먼 부모님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하였다.

아버지가 “너는 왜 울다가 웃다가 하느냐”고 물었다.

사마는 대답하기를 “부모님이 아직 늙지 않으셨는데 눈이 어두우시니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내가 부양하게 되었으니 웃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제가 부양하겠습니다” 하였다.

 

그는 부모님이 다니는 모든 곳에 그물을 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칫솔과 세숫물을 갖다 바치고,

맛난 과일을 권하고 양친이 식사하신 뒤에라야 자신이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사슴들에게 둘러싸여 숲속으로 가서

킨나리들과 함께 나무뿌리와 과일을 가지고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미가삼마타강에서 물독으로 물을 길어 와서 그 물을 데워서 목욕시켜 드린 후에

화로를 가지고 와서 양친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양친이 앉으면 과일을 권하고 그리고 그 나머지를 자신이 먹었다.

 

어린 사마가 부모가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 된 것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한 것과

장애가 생긴 부모님을 봉양하는 구체적인 실천들의 묘사가 감동적이고 흥미롭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어 1인 가구 시대에 접어들었다.

친족의 명칭이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처하였다.

이제 부모를 봉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봉양한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지경에 이른 것이다.

거기에 평균수명이 급속히 늘면서 노령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마는 자신이 직접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힘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보다 더 보람 있고 행복감을 주는 것은 드물 것이다.

하물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기쁜 마음으로 보살피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친부모와 배우자의 부모 또한 가릴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발견한 한 무더기의 뼈에 예배하고

이 뼈가 여러 대에 걸쳐 나의 부모였다고 하셨다.

다 옛적에는 나의 친부모이고, 배우자의 부모인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부처님을 봉양하는 것과 같다.

부모를 죽이는 일은 부처님을 죽이는 것과 같다.

그것은 구제할 길이 없는 큰 죄이다.

 

절에서 새벽마다 종을 치며 외우면서 잊지 않으려고 하는 다섯 가지 큰 은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생양구로부모지은(生養劬勞父母之恩)이다.

고통 속에 낳아 힘들게 기른 하늘 같은 부모의 은혜라는 말이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77호 / 2023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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