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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13>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 또 다른 생각이 나타난다 -

by 수선화17 2024. 3. 3.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13>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 또 다른 생각이 나타난다 -

 

제23화 따져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본문

이유일유(二由一有)   

일역막수(一亦莫守)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둘이 되니,

하나 역시 지키지 말라.

 

강설

이번 구절 역시 분별(分別)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철학자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생각하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부처님께서는,

생각하는 것은 분별(分別)로 이어져서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만들어낸다고 하셨다.

고정관념이란 굳어진 생각을 말하는데,

이것이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저것이라는 다른 하나의 생각이 생겨나므로,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을 생각하면 불행이 생기고, 극락을 생각하면 지옥이 자동으로 생겨난다.

물론 태어났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죽는다는 생각이 생긴다.

이러한 생각이 실재의 모습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마음을 망념(妄念)이라 한다.

 

그래서 만법유식(萬法唯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이 그대로 나타나서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하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좋은 생각을 하면 덩달아 나쁜 생각이 같이 나타나게 되니,

한 생각은 곧 괴로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둘로 나누어져

선악(善惡) 시비(是非) 분별의 상대적인 개념이 되고,

이 시비(是非) 분별이 수많은 생각으로 갈라져서

결국 온갖 사건 사고의 번뇌 망상이 되어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한 생각을 없앰으로써 시비 분별을 사라지게 하면서

궁극에는 생사마저 해탈하는 것이 불교의 최종 목적이라 하겠다.

 

늘 강조하듯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좋은 것을 찾으려고 무지 애를 쓰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나쁜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달라붙는다.

행복한 만큼 불행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삶의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방이 불을 좋아하여 불로 뛰어드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작금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다.

북한의 핵을 없애기 위해 여러 국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나라 국민들이 애를 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도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그러나 세계적인 큰일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크게 욕먹을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 역시 인과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끽한 인과(因果)로 인하여 전쟁이라는 과보(果報)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한쪽을 고집하면 다른 한쪽이 생기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업(業)이 좋아서 평화를 지키게 되는 때도 있고,

각자의 나쁜 업이 모여서 전쟁이 생기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공업(共業)의 인과(因果)이다.

 

문제는, 평화로운 때에도 어떤 사람은 나쁜 업이 작용하여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전쟁 중에도 어떤 사람은 좋은 업이 작용하여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운 때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락(苦樂)의 업(業)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일어나든, 큰 사건이 발생하든,

이 또한 인과의 작용으로서 거대한 공업(共業)에 의한 것이므로,

내가 간섭을 하든 간섭을 하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독립이니, 민주 투쟁이니, 평화니, 옳고 그른 시비니, 가족이니, 직장이니, 사회니,

국가니 하는 것들은 시비(是非) 분별의 인과가 흐르는 모습들로서,

영원히 인과(因果)의 반복만 거듭할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시비 분별의 관념(觀念)인 망념(妄念)을 없애는 것 이외에는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생각을 없앰으로써, 또 다른 생각이 과보로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여,

좋고 나쁜 인과의 과보를 끊고, 영원히 시비 분별이 없는 피안(彼岸)의 깨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함에 세상 큰일보다 더욱 더 중요한 일은 바로,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 이상의 것은 없다.

 

송(頌)

세상에 큰 일도 인과(因果)의 흐름일 뿐,

간섭을 하거나 간섭을 하지 않거나

중요한 것은 내가 편안한가이다.

편안 하려면 시비 분별의 망념(妄念)에서 벗어나라.

 

제24화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본문

일심불생(一心不生)   만법무구(萬法無咎)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 일에 허물이 없다.

 

강설

이 대목은 12연기(緣起)를 연상하게 한다.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결국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로 이어지게 되니,

무명(無明)은 곧 한 생각이 된다.

무명(無明), 밝지 못하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이니,

어리석음은 곧 분별(分別)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고로 한 생각은 이것과 저것의 두 가지 분별상(分別相)을 낳고,

두 가지 분별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만가지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를 만들기 때문에,

결국 생각생각마다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불편함이 스며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없으면 두 가지 분별상(分別相)이 생길 수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어디에 무슨 허물이 있을 것이며,

또 허물 아님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기서의 한마음을 내지 말라는 의미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수십 년 수행자도 분별심을 떨쳐내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수행자이건, 일반인이건, 분별심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인과(因果)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니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지 않으려면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우선 쉬운 것부터 실천하도록 한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억지로 애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과(因果)에 의한 시절인연(時節因緣)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니

무엇이건 개의치 않는 것이 좋다.

설사 일이 잘된다 하더라도 기쁨을 얻은 만큼의 과보(果報)로 인하여

다음에 일이 잘되지 않는 때가 또다시 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되었을 때는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겸양과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쁜 만큼의 과보로 인해 기쁘지 않는 일이 곧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원하는 일이 잘되고 또, 성공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잘된 만큼 성공한 만큼의 과보로 인하여

잘되지 않는 일과 실패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반드시 뒤따르기 때문이다.

 

좋고 잘된다는 한 마음으로 인하여,

나쁘고 잘 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인과의 법칙이이다.

따라서 좋다 나쁘다, 잘된다, 안된다 하는 한마음이 없으면,

좋고 나쁜, 잘되고 안되는 일조차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만법무구(萬法無咎), 어떤 일에도 걸림도 허물도 없게 된다.

 

잘되든 안되든, 마음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죽을 힘을 다해 이루어 놓은 기막힌 것들이라 해도, 종국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색(色-현상)이 공(空)이 되고, 공이 다시 색이 되는 과정만 남을 뿐이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그렇기에 집착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하면 하는 대로 인과(因果)를 면치 못하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인과에 걸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좋다 나쁘다, 한다 하지 않는다, 이룬다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는

한마음, 한생각을 놓고 또 놓고, 시비(是非-옳고 그름) 분별(分別)하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인과를 바라보면서 안온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승찬대사는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과보(果報)가 생겨 틀리다 하였으니,

마음을 내면 내는 만큼, 고(苦-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도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으로 하루를 보내며, 마음은 방하착(放下着)이다.

 

송(頌)

한 마음을 내면 두 가지 고락(苦樂)이 생기고

한 생각을 내면 두 가지 고민이 생기니,

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고락(苦樂)이 끊어지고

한 생각을 내지 않으면 고민이 없어진다.

 

[불교신문 3768호/2023년5월16일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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