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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25> “다만 근본을 얻을 뿐 다음 끝은 걱정하지 말라” -

by 수선화17 2024. 8. 15.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25> “다만 근본을 얻을 뿐 다음 끝은 걱정하지 말라” -

 

제47화 차를 놓쳤다 중요한 일이 깨졌다 큰일났다

쟁사무위실상문(爭似無爲實相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고락 시비 함이 없는 실상문으로

한번 훌쩍 뛰어서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

 

강의

마음 한번 바로 세우면 실상문(實相門)으로 들어가서

한 번에 여래지(如來地)를 증득(證得)한다는 말이다.

실상문(實相門)이란 보이고 들리는 일체의 모습을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즐겁고 괴로운 고락(苦樂)이 없고, 옳고 그른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없다.

 

여래지(如來地)에 바로 들어간다는 뜻은 실상문을 통하기만 하면,

여래(如來)가 머무는 곳에 당도한다는 의미이다.

여래(如來)란, 부처님 그 자체로서 해탈(解脫) 피안(彼岸) 성불(成佛)

견성(見性) 중도(中道) 반야(般若) 진공(眞空) 열반(涅槃)이라고도 한다.

이를 깨달음, 깨침이라고도 하는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깨달음을 위한 마음 수행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는데, 점수(漸修)와 돈오(頓悟)이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는 있으나,

이 두 가지 수행(修行) 모두 훌륭한 것이어서,

어느 것이 더 좋고 옳은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점수(漸修)는 점차적으로 수행을 닦아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논리다.

돈오(頓悟)는 점수 없이도 한 생각 돌려서

마음만 바로 바꾸기만 하면 몰록 깨칠 수 있다는 논리다.

깨침의 경지까지 가보지 않은 소납의 견해로는 짐작만 할 뿐,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세상의 모든 모습과 마음의 모양이 분별(分別)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 분별로 인한 인과(因果)로 말미암아 고통과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받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분별심(分別心)과 인과(因果)를 분명히 알고,

모든 것은 인과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분별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분별과 인과를 분명히 아는 단계를 점수(漸修)로 보고,

신구의(身口意-행동,말,생각) 삼업(三業)을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 행한다면,

바로 돈오(頓悟)의 깨침으로 연결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깨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고통과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을 만드는 마음의 구조가 인과(因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무엇을 하더라도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거니,

그 과정에서 즐거운 마음의 인과(因果)로 인해

괴로운 마음의 과보(果報)를 받으며 영원히 윤회(輪廻)하게 된다.

 

매회 비슷한 말을 반복하며 강설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더 이상 할 말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나 뻔하고 앞으로의 모습들도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잘살고 못사는 기준을 돈이나 직장, 사업, 성공,

직위나 명예가 어느정도 인가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이는 수박 겉핥기여서 겉모양에 지나지 않을 뿐,

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과(因果)의 업(業)이 얼마나 큰가를 따져보는 것이 정확하다.

 

인과(因果)의 업(業)이란, 즐거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의 질과 양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인과(因果)의 업(業)이 큰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이 많다.

반면에 고락(苦樂) 인과(因果) 업(業)이 작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이 작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조건이 좋다 해도 업(業)이 두터운 사람은 괴로운 일이 많이 생기고,

반대로 열악한 조건속에서 사는 사람일지라도

고락(苦樂)의 인과(因果) 업(業)이 작으면 상대적으로 괴로움을 덜 받게 된다.

마음을 닦는 수행자(修行者)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 재산도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삶속에서도 업(業)이 작은 스님들은 마음 상하는 일이 작다.

돈이 많고 조건이 좋은 수행자라 하더라도 업(業)이 두꺼운 이는

불만과 불평 등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고(苦)가 많아져서 고통을 많이 받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과(因果)의 업(業)이란 분별심(分別心)이다.

좋은 것을 많이 찾고 가지려는 욕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분별심이 커져서

덩달아 업(業)이 커지고, 고락(苦樂) 인과(因果)가 커지며 괴로움을 크게 받는다.

그러니 매사 욕심이 생길 때, 그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로 인해

다음에 반드시 괴로운 일이 생긴다는 것을 즉시 알아채고 멈춰야 한다.

또 남과 시비(是非)할 때도 내가 억울하거나, 잘 잘못을 따지거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러한 시비분별(是非分別)로 말미암아

다음에 그 과보(果報)로 인해 괴로운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고 멈춰야 한다.

 

옳은 것을 주장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기는 하다.

이때는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안된다.

고락(苦樂)과 시비(是非) 자체가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분별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므로

결국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다 막히면 화를 내지는 말고 ‘인과가 나타났구나’하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다시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

만약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었다면 너무 기뻐하지도 말라.

고락(苦樂) 인과(因果)에 의해 좋지 않은 과보(果報)가 곧 생기기 때문이다.

 

차를 놓쳤다. 그럼 다음 차를 타면 된다.

그런데 차를 놓치는 바람에 중요한 일이 틀어졌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동요하면 안된다.

차분히 수습을 한다.

중요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를 놓치는 일이 생기는 인연에 순응하여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계획한 일이 잘 된다는 것은

계획한 일이 잘되지 않는 과보(果報)가 반드시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차를 놓쳐서 중요한 일이 잘되지 않게 된 지금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화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지금의 마음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과 마음을 바로바로 돌려 세우는 것이 점수(漸修)이고 돈오(頓悟)이다.

지금 바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지 않으면,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평안하다.

이를 깨침과 깨달음이라 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27호/2024년7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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