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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27> “불성은 본디마음, 분별이 없는 중도의 마음이다” -

by 수선화17 2024. 8. 24.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27> “불성은 본디마음, 분별이 없는 중도의 마음이다” -

 

제51화 치매

불성계주심지인(佛性戒珠心地印)

무로운하체상의(霧露雲霞體上衣)

불성이라는 계의 보배는 마음 도장이요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다

 

강의

불성(佛性)은 본디마음 즉, 분별(分別)이 없는 중도(中道)의 마음으로 곧 부처를 뜻한다.

눈곱만큼의 괴로움도 없는 완벽한 마음 상태이다.

계(戒)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말한다.

지켜야 할 것이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이 역시 분별로 나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분별(分別)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두 가지 마음

즉, 좋은 것을 원함에 나쁜 것의 인과(因果)가 생기지 않도록

두 가지의 분별없는 마음을 곧 계(戒)라고 하고 계율(戒律)이라 한다.

 

분별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 계(戒)를 지키니, 이를 마음의 보배구슬

즉, 계주(戒珠), 또는 수정주(水精珠), 감로주(甘露珠), 심주(心珠)라고도 한다.

이 같은 불성주계(佛性珠戒)가 마음바탕의 본래 모습이 틀림없다는 의미로서

심인(心印), 심지인(心地印)이라고도 한다.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인연의 모습들로 몸에 걸치는 옷과 같이

시절 인연에 따라 이렇게도 입어보고 저렇게도 입어보는 변화에 불과하다.

본래의 몸은 따로 있으니, 바로 분별없는 중도심(中道心)의 불성(佛性)을 말한다.

또 현상의 모습들은 이내 사라지고 없어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같고

성주괴공(成住壞空)과 같아서 결국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안개 이슬 구름 노을로 표현한 것이다.

 

수행을 통해 마음을 잘 닦아 분별(分別)의 인과(因果) 업(業)을 멸(滅)하여 없앤다면,

중도심으로 부처 자리에 엄연히 앉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놈의 탐진치(貪嗔痴-탐심, 성냄, 망상) 삼독심(三毒心)이라는

분별(分別)을 낳는 관계로, 인과(因果)의 고통과 괴로움을 피할 수 없게 되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물론 내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안개, 이슬, 구름, 노을과 같이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이라는 공(空)한 생각을 하거나,

또 그 이전에 무엇 하나라도 바라고 원하는 욕심과 탐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어디 마음이 그러하던가.

 

그러나 인과(因果)의 내용만 잘 알고 있더라도

분별심(分別心)을 어느 정도는 감쇄할 수가 있어서,

인과(因果)에 따른 부담과 고통을 덜 받을 수가 있다.

이는 다름 아닌 고통과 괴로운 일이 생기더라도

시간은 내 편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인과(因果)는 본래 따지고 보면 이득도 없고 손해도 없는 무득무해(無得無害)이다.

문제는 많이 얻으려 하면 많이 잃게 되는 고통이 따르고,

높이 오르면 오른 만큼 내려와야 한다는 수고의 괴로움이 따르게 되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욕심부린 만큼만 인과(因果)를 받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업(業)을 지은 만큼 스스로 받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받게 된다는 자작자수(自作自受)이다.

 

그러니 이미 저질러 놓은 업과(業果)는 받아야만 할 수밖에 없으나

이때,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고업(苦業)의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연이어 즐거운 낙업(樂業)의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참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믿음을 갖지 않더라도 괴로운 고업(苦業)의 때가 다하여 지나가면,

당연히 좋은 낙업(樂業)의 시절이 반드시 찾아오기는 하겠으나,

인과(因果) 자체에 대한 신심(信心)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고통과 괴로움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때로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나, 이러한 때는 인과(因果)와 분별(分別),

그리고 업(業)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 마음상태에 이를 것이니,

이같이 거대한 고업(苦業)이 나타나기 이전에

미리 충분히 인과에 대한 신심(信心)을 굳건히 다져 놓아야 한다.

 

머리가 좋거나 기억과 감각이 뛰어나면 그만큼 망상(妄想)으로 인한

과보(果報)로 번뇌에 따른 괴로움이 더 따르게 된다.

고통과 괴로움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과(因果)의 업(業)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고기 가운데 붕어는 특히 기억력이 없다고 한다.

우스개소리로 2초마다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먹는다고 하니,

이 정도 되면 2초마다 새로운 삶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기억하는 의식 때문에

더 크게 인과(因果)의 고통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깨달음이란 바로 분별의 기억을 잊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적인 분별(分別)의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몸이 늙고 병들 때 소위 망령(妄靈)이라고 하는 치매현상이 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사자에게는 매우 적절한 마음치유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늙고 병든데 따른 회한이 얼마나 크겠는가.

다만, 옆에서 안타깝게 간호하는 가족들은 물론 힘들고 불편하겠으나,

이는 그 가족 되는 사람의 인과(因果) 업(業)일 뿐이다.

 

그만큼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분별심(分別心)이고,

분별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좋고 나쁜 고락(苦樂)의 마음이나, 옳고 그른 시비(是非)의 마음은

스스로 고업(苦業)을 짓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분별에서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고의 참회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 뿐이니,

오늘도 잠깐이라도 이를 행하는 날이 되시기를….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29호/2024년7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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