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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28> “마음 깨친다는 것은 분별(分別)하지 않는 마음이다” -

by 수선화17 2024. 8. 30.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28> “마음 깨친다는 것은 분별(分別)하지 않는 마음이다” -

 

제53화 자존심과 폼

불시표형허사지(不是標形虛事持)

여래보장친종적(如來寶杖親跡)

이는 모양을 내어 잘 보이려 헛되게 지님이 아니요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기 위한 것이다

 

강의

육환장(六環杖)인 석장(錫杖)을 지니는 것은,

폼을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부처님 분별심(分別心)없는 중도(中道)의 마음을 본받고자 한다는 말씀이다.

중생, 특히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오욕(五慾-잠,먹는욕심,재산욕,명예욕,성욕)의

본능 가운데 가장 질기게 집착하는 욕망이 바로 명예욕(名譽慾)이라는 주장이 많다.

 

이는, 소위 자존심이라는 아상(我相)에 해당하는데,

나를 잘 몰라주거나 무시를 당하게 되면 나머지의 재산이나,

자고 먹고, 이성(異性)을 모두 잃게 된다하더라도,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위 정치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나머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명예욕이란 무서운 집착과 욕망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는 크게 다가오는 업장(業障)의 흐름일 뿐이다.

남들이 많이 알아주거나 엄청난 추앙을 받아서

그 인기로 인하여 크게 즐겁고 기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여지없이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따르게 되어

즐거운 낙업(樂業)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엄청난 괴로움의 고업(苦業)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의 이 구절은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나

명예에 집착한다는 것은 물거품과 같이 허사임을 잘 알아서,

부처의 성품인 분별없는 중도(中道)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모양이나 모습, 일시적인 현상에 끄달리지 않고

여여(如如)한 마음으로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가끔 재빠른 행동으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돈을 많이 벌거나,

갖은 재주와 술수를 부려 명예를 얻고 재산을 취득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때로는 칭찬을 받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장에 이익을 취했다 하여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기쁘고 즐겁기도 하겠지만,

세상의 이치란, 흥망성쇠(興亡盛衰)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듯이,

어느 한쪽만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락 인과(因果)의 한 단면일 뿐이다.

취한 만큼 잃게 되고,

좋은 만큼 나쁘게 되는 과보(果報)가 남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잘 다스려 스스로 속상함이나

못마땅한 마음을 품지 않는 이는 진정한 불자라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화를 낼 만한 사안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는 이야말로 제대로 된 불제자다.

 

불자는 이상(理想)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상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바로 지금 즉시, 그 어떤 생각이든 감정이든

모두 방하착(放下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이상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활하는 가운데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인과(因果)를 화두처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조급한 마음으로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따라서 화를 내거나 진심(嗔心-성냄)을 품어서는 안된다.

진심(嗔心)을 내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의 말에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어떤 일을 할 때나, 이 일이 안되면 어떡하지? 남들이 나를 깔보면 어떡하지?

내가 속으면 어쩌나? 손해를 보면 어떡하지? 시험에 떨어지면 큰일인데?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내가 약속을 어기면 어쩌나?

등등의 의심과 조급한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어차피 일이 되면 되는대로,

만족한 마음의 과보(果報)가 따라서 언젠가는 불만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지금 일이 안된다 하여 실망하거나 낭패에 따라 불만을 가지게 되면,

그 인과(因果)로 말미암아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다음에 다른 일이 잘 될 것이기 때문이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염려하지 말고 지금 당장의 마음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는

인과를 믿고 이상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일이 잘된다는 생각과 잘못된다는 생각이

분별심(分別心)으로 작용하여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결국 잘되는 것도 없고, 잘못되는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마음을 졸여 스스로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이 괴로운 고업(苦業)인 고로,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작자수(自作自受)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대처방법으로는,

잘되고 안되고의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보는 그대로, 듣는 그대로, 모두가 있는 그대로 대하는 습관을 들여서,

늘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면 좋고 저러면 싫고,

이래서 좋고 저래서 나쁘다는 선입견을 먼저 없애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처님의 보배 지팡이인 여의봉(如意棒) 즉, 육환장(六環杖)을 지니게 되어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운 그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분별(分別)을 없애고, 인과(因果)를 멸하고, 괴로운 과보(果報)을 받지 않고,

아라한 보살들과 함께하고, 영원히 상락아정(常樂我淨)에 머무르기 위하여,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30호/2024년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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