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열의 해심밀경의 마음학]
- 16. 유식삼상 -
광대하고 미묘한 마음의 귀결점
마음 세 가지 모습 일컫는 말
삼상 궁극적 본질은 삼무자성
마음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어
중생심, 대상 만나면 대상으로
다음은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이다.
일체법상이란 중생의 모든 마음 즉 오식, 육식, 칠식, 팔식을 의미한다.
이 품에서는 이 마음들이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한다.
여기에는 덕본보살이 등장한다.
덕본보살은 부처님께 모든 법에 훌륭한 재능을 지닌 보살이라고 하셨는데
무엇에 근거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 묻는다.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하신다.
“덕본이여! 제법의 상이라 함은 간략히 세 가지가 있다.
변계소집상(徧計所執相)과 의타기상(依他起相)과 원성실상(圓成實相)이다.”
제법은 일체법의 다른 말이다.
일체 법은 주관과 객관 모두를 일컫는다.
초기경전에서는 십이처(十二處)를 일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십이처를 육근과 육경으로 설명하나
이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처(處)는 중생의 무명과 업에 의해 나타난 잘못된
자아관과 세계관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용어는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일체법을 ‘해심밀경’에선 마음,
즉 식(識)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이든 정신이든 세상이든 그대로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존재의 모습인 일체 법상은 곧 마음의 모습인 식상(識相)이 된다.
이에 따라 일체 법을 깨닫는다는 것은 마음을 깨닫는 말과도 같다.
본래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에 마음에 정해진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대상을 만나면 대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마음은 정해진 모습은 없지만
눈이 수박과 접촉하면 마음이 일어나 수박의 모습을 인식한다.
유식학에서는 이때 눈앞에 보이는 수박은 곧 마음의 모습으로
마음이 인연을 따라 수박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눈앞의 수박 모습은 다름이 아닌 중생 자신의 마음 모습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마음에는 모습이 없으나 인연을 따라 모습을 나타낸다’는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마음공부에 긴요한 정보가 된다.
본문에는 유식의 핵심 용어인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이 설해진다.
이를 유식학에서는 유식삼상(唯識三相)이라고 한다.
중생의 정신세계는 넓고도 깊고도 미묘하다.
부처님은 마음을 부사의(不思議)하다고 말씀하시고
오직 여래만이 그 정체를 온전히 깨달아 안다고 하셨다.
그러나 마음이 이렇게 광대하고 심심하고 미묘하더라도
이를 집약하면 삼상으로 귀결이 되며,
그 삼상의 본질은 다시 삼무자성(三無自性)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유식의 교학이다.
삼무자성은 다음의 ‘무자성품’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으므로 그때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아무튼 이 유식삼상의 가르침은 ‘해심밀경’뿐만이 아닌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교설로
자아와 세계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으며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마음을 닦아 깨달음을 얻고 일체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유식삼상과 삼무자성을 공부할 것을 권한다.
마음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떤 모습이며,
어떤 성질인지를 공부하면서 실참으로 들어가는 것이 수행의 바른 순서이다.
초기불교에 침잠한 사람들은 유식의 교설이 초기경전에 언급된 바가 없다 하여
유식 삼상설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초기의 교설은 마음을 자세히 분석하고는 있으나 유식의 교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초기경전에는 대상계조차도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식의 가르침이 설해져 있지 않다.
대승의 깨달음은 반드시 이 유식삼상의 교설과 일치되어야만
올바른 깨달음이라 할 수 있기에 공부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미륵대불이 서 계신다.
사람들이 미륵불을 친견하지만
왜 법주사에 미륵 대불을 모셔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이는 별반 없어 보인다.
법주사는 과거에 유식삼상에 근거한 도량으로 법상종의 본산이었다.
미륵보살이 인도의 아유타국 강당에 하강하여 무착을 비롯한 대중을 향하여
‘유가사지론’ ‘분별유가론’ 등의 유식 논서들을 강설했기 때문에 미륵불을 모셔 놓게 된 것이다.
법상종과 법성종에서는 미륵불을 유식의 시조로 삼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41호 / 2024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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