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들은 귀한 인연들 입니다.
불교 이야기

- 17. 변계소집상 -

by 수선화17 2025. 8. 25.

[이제열의 해심밀경의 마음학]

- 17. 변계소집상 -

 

두루 분별하고 집착한다는 의미

불교적 관점에서 본 현실 세계

세상은 분별심이 만든 결과물

대상에 이름 붙이고 기준 고정

명칭·개념에 집착은 속박 초래

 

앞서 이 경전의 네 번째 장인

‘일체법상품’에서 중생의 마음을 세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세 가지는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이다.

부처님께서는 덕본보살에게 이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하신다.

먼저, 마음의 세 가지 모습 중 변계소집상에 대한 설명이다.

 

“어떤 것이 제법의 변계소집상인가?

모든 법에 자성이 있는 것처럼 이름을 세우고, 나아가 언설을 일으키는 것이다.”

 

변계소집(徧計所執)이란 두루 분별하고 집착한다는 의미다.

변계는 계탁(計度)이라고도 하며,

무명으로 인해 진실을 망각하고 모든 법에 대해 왜곡된 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양한 조건에 의지해 일어난다.

이를 불교 전문 용어로 연기법(緣起法) 또는 연생법(緣生法)이라 하며,

유식학에서는 이를 의타기(依他起)라고 한다.

연기법, 연생법, 의타기는 같은 의미를 지닌 용어들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모든 법이 다른 것들에 의지해 발생했기 때문에

고유한 자기 모습이나 성질이 없다.

이를 불교 용어로 무자상(無自相), 무자성(無自性)이라 하며,

다른 표현으로는 공상(空相), 공성(空性)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모든 법이 고유한 모습이나 성품이 없다면,

어떻게 고유한 이름과 개념과 가치가 따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중생들이 사용하는 모든 명칭과 언어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이다.

일체의 법은 실상에 있어서 명칭과 언어를 초월해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무명으로 인해

모든 법이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고,

모든 것에 본래부터 고유한 모습과 성품이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업(共業)의 영향을 받아

모든 법에 이름을 붙이고 개념을 설정하며 가치와 기준을 고정화한다.

중생들이 사용하는 모든 명칭과 개념, 가치와 기준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중생들이 일으키는 마음은 모두 분별에 의한 것이며,

그 분별은 명칭과 개념, 가치와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포도는 망고보다 열매가 훨씬 작고 새콤하다’고 생각할 때,

포도와 망고는 각각의 씨앗과 농부, 흙, 물, 햇빛, 바람 등에 의지해 생겨난 연기성으로,

두 과일의 모습은 고유한 자기 모습이나 성질이 아니다.

두 과일의 모습과 성질은 씨앗, 농부, 흙, 물, 햇빛, 바람에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를 망각하고,

이 두 과일에 본래부터 고유한 모습과 성질이 있다고 믿는다.

이어서 ‘포도’와 ‘망고’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포도와 망고는 이런 모습의 과일이다’라는 개념을 설정한다.

그리고 ‘달다’, ‘시다’, ‘맛이 있다’, ‘맛이 없다’ 등의 가치를 설정한다.

중생들의 이러한 인식 방식을 변계라고 한다.

 

변계는 중생들이 보고 듣는 모든 대상을 향해 행해지기에,

유식학에서는 이를 주변계탁(周偏計度)이라고 하며,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존재들에 대해 명칭을 세우고 그 뜻을 계탁하는 ‘의명계의(衣名計義)’,

명칭의 뜻에 의해 명칭을 세우는 ‘의의계명(依義計名)’,

명칭에 대해 실체와 자성이 있다고 여기는 ‘계명자성(計名自性)’,

물질과 현상계의 모습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계색등실유상(計色等實有相)’,

물질과 현상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계색등실유색무생등(計色等實有色無色等)’,

연기된 일체의 현상계가 항상하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무상하다고 여기는

‘계상무상(計常無常)’이 그것이다.

 

변계소집에서 ‘소집(所執)’이란 중생들이 변계한 바를 굳게 집착한다는 의미다.

중생들은 그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 후,

자신이 인식한 것이 올바른 것인 양 고정하고 집착한다.

이로써 중생들에게 자신과 더불어 세계는 집착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변계소집은 크게 두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변계의 번뇌이며, 또 하나는 소집의 번뇌다.

 

이와 같이 살펴보면 결국 세상은 중생의 분별심이 만든 결과물이다.

중생들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다시 집착하게 되어 속박당하고,

그로 인해 갖가지 부자유와 함께 괴로움을 겪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43호 / 2024년 9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 원성실상 -  (46) 2025.09.06
- 18. 의타기상 -  (28) 2025.08.31
- 16. 유식삼상 -  (28) 2025.08.21
- 15. 아뢰야식과 다른 식들 -  (28) 2025.08.15
- 14. 아뢰야식 -  (29) 2025.08.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