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들은 귀한 인연들 입니다.
불교 이야기

- <42> 강을 건너려는 일곱 사람 -

by 수선화17 2024. 1. 30.

[용하스님의 열반경이야기]

- <42> 강을 건너려는 일곱 사람 -

 

불성 갖춘 중생이 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

모든이가 대열반을 얻지 못하는 건

모두 번뇌의 장못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갠지스강 사람들이 모두 손발을 갖추었지만 다 강을 건너지 못하듯이,

불성을 갖춘 모든 중생이 대열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잘못도,

성스런 도의 잘못도, 중생들의 잘못도 아니며, 모두 번뇌의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중생이 부처님 성품을 지녔음에도 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기 도적을 피해 갠지스강을 건너려는 일곱 사람이 있다.

첫째 사람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곧 빠져서 다시 떠오르지 못하였으니,

몸이 수척해서 기운이 없고 또 헤엄치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은 빠졌다가 다시 솟아올랐지만, 이내 다시 물에 잠기고 말았다.

기운을 차려서 다시 솟아오를 수 있었으나 헤엄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솟아오른 뒤에 다시 가라앉지 않았다.

기운을 차려 다시 솟아올랐고, 또 헤엄치는 법을 익혀두었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은 다시 솟아오른 뒤에 계속 물 위에 머물면서 사방을 관찰하였다.

 

다섯째 사람은 다시 솟아오른 후, 물 위에 머물면서 사방을 관찰하고는 곧 떠났느니라.

여섯째 사람은 솟아오른 후 곧장 나아가 강 건너 얕은 데에 머물렀다.

 

도적의 정황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일곱째 사람은 이미 저쪽 언덕에 도달해 큰 산 위로 올라감으로써

다시는 도적에 쫓기는 공포가 없어졌으며 안락을 누릴 수 있었다.

 

선남자야, 태어나고 죽는 큰 강 또한 이와 같아서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이들은 번뇌의 도적을 두려워하여 발심(發心)을 하고 생사의 강을 건너고자 한다.

 

첫째 사람은 나쁜 친구를 가까이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고

온갖 삿된 법을 받아들여 그릇된 견해를 갖는다.

이러한 사람을 ‘일천제’라 하는데,

그는 선근을 단절하였으므로 믿음이 없고 생사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악한 업이 무겁고 믿는 힘이 없기 때문이니, 갠지스강을 건너려는 첫째 사람과 같다.

 

둘째는 선근을 단절하여 생사에 빠졌다가 다시 믿는 마음을 내어 계를 지키고,

경전을 수지하고, 보시를 좋아하고, 지혜를 수습한다.

그러나 근기가 둔하여서 다시 나쁜 친구를 만나고 모든 선근을 단절하게 되어

결국 생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 갠지스강의 둘째 사람과 같다.

 

셋째는 생사에 빠졌지만,

다시 믿는 마음을 내고 항상 선지식을 가까이하므로 솟아올라서 다시 가라앉지 않는다.

이 사람은 계율과 부처님 말씀과 보시와 지혜를 수습하되,

항상 선지식에 친근하므로 근기가 예리하고 믿음이 굳건해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나니, 갠지스강의 셋째 사람과 같다.

 

넷째는 선우를 가까이 한 까닭에 다시 생사에 빠지지 않는 불퇴전을 얻으며,

또한 사방을 두루 관찰한다.

사방이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과이니, 그는 갠지스강의 넷째 사람과 같다.

 

다섯째는 생사에서 다시 떠오른 후 퇴전함 없이 곧바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비록 자신은 건너지만 중생을 돌아보지 않으니,

이를 떠났다고 하고 벽지불이라 한다.

갠지스강의 다섯째 사람과 같다.

 

여섯째는 생사에서 솟아올라 곧바로 나아가 강을 건너되 얕은 곳에 계속 머무는데,

이것은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머물러 번뇌를 관찰하는 것이니,

갠지스강의 여섯째 사람과 같다.

 

일곱째는 생사의 강에서 솟아올라서 곧바로 나아가 저 언덕에 도달하고

대열반의 높은 산에 올라 모든 번뇌의 공포를 여의고 안락을 누린다.

이 사람이 곧 부처님 여래이며, 갠지스강의 일곱째 사람과 같다.

 

선남자야, 갠지스강 사람들이 모두 손발을 갖추었지만 다 강을 건너지 못하듯이,

불성을 갖춘 모든 중생이 대열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잘못도,

성스런 도의 잘못도, 중생들의 잘못도 아니며, 모두 번뇌의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중생이 부처님 성품을 지녔음에도 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이다.

 

- <대반열반경> 제32권 ‘사자후보살품’에서

 

용하스님/ 포천 정변지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