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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21> “분별심 사라지면 고락의 인과도 사라진다” -

by 수선화17 2024. 7. 25.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21> “분별심 사라지면 고락의 인과도 사라진다” -

 

제39화 기가 막힌 점과 사주

종우봉도상탄탄(縱遇鋒刀常坦坦)

가요독약야한한(假饒毒藥也閑閑)

창과 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강의

비현실적인 얘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마음을 깨친 조사(祖師)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곧 현실이다.

창과 칼에 찔리고 독약을 마시면 우선 엄청난 고통을 느낄 것이다.

만약 죽음이라도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마음을 깨친 이의 입장은 어떤가?

우선 분별심(分別心)이 없으므로 죽고 사는 생사(生死)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죽음과 삶의 생사(生死)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억울함도 분함도 없다.

그러니 아쉬움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그냥 그대로일 뿐이다.

 

다음에 다시 태어날 터이니 이런 인과(因果)의 과정쯤이야 별것 아니다라는

분별(分別)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칼에 찔리고 독약을 먹어 몸으로 전해오는 엄청난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물론 고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는 쉽게 참을 수가 있다.

그러나 분별심(分別心)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는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사라지기 때문에,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는 고통의 업(業)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야말로 자유자재(自由自在)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은 분별심(分別心)에서 생긴다.

괴로움과 고통은 즐거움과 희열(喜悅)이라는 상대적인 두가지 분별심에서 생긴다는 말이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몸을 사용하여 즐겼다면 그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로 인하여

몸이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때가 오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공짜가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마음의 법(法)이다.

이를 업(業)이라 하고 인과(因果)라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차적인 그 다음 문제이다.

부(富)와 명예와 권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는 별 상관이 없다.

다만,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괴로움이라고 하는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만 있을 뿐이다.

그 어떤 무엇을 하더라도 즐거움과 기쁨,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고 가진 만큼,

딱 그만큼의 괴로움과 슬픔, 불행과 불편함의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질량불변(質量不變)의 법칙이다.

 

젊음의 인과로 인해 반드시 늙음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젊을 때의 시간과 늙을 때의 시간이 다르듯이,

즐거운 시간의 인과로 인해 괴로운 시간의 과보(果報)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와같이 일상의 삶에 있어서 만약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언젠가 내가 즐기고 행복했던 때의

인과로 인해 과보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반대로, 내가 지금 기쁨과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면,

과거 언젠가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지금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과 편안함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과보(果報)로 괴로움과 슬픔과 불행과

불편한 시간이 다가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좋은 것만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니,

나쁜 것의 과보(果報)를 받기 때문이다.

 

거짓말, 사기, 도둑질, 살생, 이간질 등

오계(五戒)와 십계(十戒) 등의 계(戒)를 범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즐기려는 얄팍한 마음 때문에 범계(犯戒)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즐기고 짜릿한 맛을 본 만큼의 과보(果報)를 받아서

언젠가는 고통과 괴로움을 반드시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점을 치거나, 사주를 보거나, 굿을 하거나, 방법을 쓰거나,

남의 이익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이익만을 위해 분별(分別)을 행하는 얄팍한 술수는,

반드시 좋지않은 과보(果報)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 밖에 없으니,

이는 분별심을 없애고 인과의 업(業)을 멸하여 좋지않은 과보(果報)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23호/2024년6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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