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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31>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방하착!” -

by 수선화17 2024. 9. 12.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증도가 강설]

- <31>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방하착!” -

 

제59화 나방이 불에 뛰어들 듯이…

기유착공병역연(棄有著空病亦然)

환여피익이투화(還如避溺而投火)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이 역시 병이니

마치 물을 피하다가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강의

있음의 유(有)와 없음의 공(空)은 상대적인 것이고, 이 또한 분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있음을 버린다고 한다면 없음의 공이 나타나게 되고,

없음의 공을 추구하는 것은 곧 있음의 인과(因果)가 나타나게 되니,

이 둘의 경계 또한 분별(分別)의 병이 아닐 수 없다.

물은 있음을 뜻하고, 있음을 버리려고 하면 없음의 공인 불이 나타나므로,

있음에도 집착하지 말고, 없음의 공에도 집착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없음의 공을 추구하게 된다면,

이는 상대적인 있음을 피하기 위한 공이 되므로 가짜 공이라고 했다.

진정한 공은 있음에도 머물지 않고,

없음의 공에도 머물지 않는 이름하여 진공(眞空)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질적인 것과 반연(攀緣)된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입산 수행하는데 있어서,

일체가 공이므로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려야지 하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이 또한 분별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마저 일으키지 않아야 진정한 수행자라 할 것이다.

 

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이 있다.

완전한 무소유란, 마음이 완전하게 편안한 단계인 28천 가운데,

마지막 단계의 28 비비상처천(非非想處天)

다음에 해당하는 최고의 마음 단계를 가리킨다.

 

있음도 소유하지 않고, 없음의 공도 소유하지 않는 단계를 말하는데,

물질적인 금욕이나, 명예와 권력 등 오욕(五慾, 식욕 수면욕 재산욕 명예욕 성욕)

가운데 눈곱만큼의 소유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분별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마음을 무소유라 이름한다.

모든 중생, 특히 사람들은 감정이라는 정(情)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옳네 그르네 하는 정의(正義)와 불의(不義) 또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만히 따져보면, 내 감정에 맞으면 정의이고, 내 감정에 맞지 않으면 불의가 된다.

 

그러나 감정의 정(情)은 좋고 싫은 분별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진리를 부르짖고 인과의 이치를 말하고, 깨달음이니,

성불이니, 해탈이니, 열반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내 마음에 닿지 않고

나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이는 나방이 불에 타서 죽는 줄도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똑 같은 말을 이리저리 반복하는 저 또한

한심하기 이를 대 없이 보이긴 하나,

이 또한 나의 업(業)이니 만큼 내가 감당할 수밖에는 없다.

 

내 마음에 들게 하려고 하면,

인과에 걸려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또 나타나게 된다.

내가 기분이 좋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인과에 걸려 기분이 나쁜 일이 또 발생하게 된다.

내가 상대방을 이기려 하면

인과에 걸려서 내가 상대에게 지는 일이 자꾸 생기게 된다.

 

인과란 이런 것이니,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인과에 늘 걸려서 넘어지고 있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분별이 생기게 되고,

분별은 인과를 낳아 괴로움의 과보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항상 물을 피하려다 불을 만나 듯,

좋지 않은 기분이 늘 따라붙게 되니,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도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제발 이제는 자신을 정확히 살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의 불구덩이를 건널 수가 없으니,

진정으로 마음을 살피고 살펴야 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33호/2024년8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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