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열의 해심밀경의 마음학]
- 23. 유상교와 무상교 -
연기는 불생불멸이며 일체가 열반
유상교에선 법의 성질 실재
무상교에선 모습·성품이 공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법을
바라보는 차이에서 비롯돼
유식불교에선 마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는 마음의 모습, 둘째는 마음의 성질, 셋째는 마음의 단계이다.
유식에서는 이를 각각 유식상(唯識相), 유식성(唯識性), 유식위(唯識位)로 설명한다.
‘해심밀경’은 유식의 소의경전으로, 마음을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룬다.
유식의 상에 해당하는 가르침은 지금까지 다룬 ‘일체법상품’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어지는 가르침이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이다.
이 품에선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이 결국 공하여 자체 성품이 없는 존재임을 밝힌다.
본문을 보자.
‘이때 승의생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량한 문으로써 일찍이 오온, 십이처, 십이연기, 사식,
사성제, 십팔계, 사념주, 사정단,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를 설하셨습니다.”’
승의생보살은 부처님께서 성도 후 설하신 초전법륜을 언급한다.
오온, 십이처, 십이연기 등의 교리는 주로 초기경전에 설해지는 가르침들이다.
예로부터 교리 판석가들은 위의 교리들을 유상교(有相敎) 혹은 유성교(有性敎)로 분류하며,
이를 소승의 가르침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유상교와 유성교는 법의 모습과 그 성질이 실재한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오온은 실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온은 무상, 무아, 고라는 세 가지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오온은 법의 상이고, 무상·무아·고는 법성이다.
유상교와 유성교는 이들을 실재한다고 본 것이다.
승의생보살의 질문은 계속된다.
“세존께서는 또한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멸이 없어 본래 고요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저는 아직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부디 그 비밀한 뜻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은 소승의 유상교와 유성교를 넘어
대승의 무상교(無相敎)와 무성교(無性敎)의 이치를 묻는 것이다.
무상교와 무성교는 제이법륜(第二法輪)에 속하는 가르침들로,
반야부의 경전들이 이에 속한다.
반야부 경전의 핵심 사상은 공(空)이며,
이는 중생의 세간법뿐만 아니라 부처의 출세간법까지 모두 공하다고 설한다.
즉, 모든 모습과 성품이 본래 공한 것이다.
대승은 소승이 상과 성의 실재를 주장하는 견해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어째서 같은 법을 두고 유상·무상의 교설, 유성·무성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연기법을 바라보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알다시피,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는 연기법이다.
연기법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법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소승은 단순히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발생하고, 인연에 의해 소멸하며,
무상하고 무아이고 괴롭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모든 법이 갖가지 조건인 연(緣)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그 본래 모습과 성품을 지니지 않아, 실로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연기법은 본질적으로 무기법(無起法)으로,
겉으로는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법이 실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소멸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반야심경’의 ‘시제법공상 불생불멸(是諸法空相 不生不滅)’이 이러한 이치를 담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은 수많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지만,
그 본래 모습과 성품을 지니지 않아 일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라진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으니,
실로 연기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무기·무멸, 불생·불멸의 모습인 것이다.
결국, 모든 법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생겨난 것이 아니고,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은 본래 아무 일도 없는 고요한 모습과 성질을 지닌다.
따라서 일체법 자체가 곧 열반이자 부처라는 말이 도출된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개인 수행자에 의해 실현된다면, 대승의 열반은 중생계 전체에서 실현된다.
의상조사가 ‘법성게’ 첫머리에서 제법은 본래 움직임이 없다고 설한 뜻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연기는 무기이며 연생(緣生)은 무생(無生)이라는 가르침에 대해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55호 / 2024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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