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들은 귀한 인연들 입니다.
불교 이야기

- 22. 유식 삼상과 의타기상 -

by 수선화17 2025. 9. 28.

[이제열의 해심밀경의 마음학]

- 22. 유식 삼상과 의타기상 -

 

어떤 번뇌라도 실체가 없다

마음공부란 욕망을 버리고

악심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식이 세 가지 모습과

성질 지니고 있음을 아는 것

 

불교의 진리는 연기법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가르침은 연기법에 기반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모두 연기법에 의해 성립한다.

대승에서는 이러한 연기법을 ‘의타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의타기란 어떤 존재도 스스로 발생하거나 유지, 존속, 소멸될 수 없고,

오직 다른 것들에 의지하여 발생, 유지, 존속, 소멸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음에도 적용되며, 중생의 모든 식은 의타기상으로 여겨진다.

 

유식불교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상인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 중에서

마음의 진리성에 해당하는 것은 의타기상이다.

이를 놓치면 마음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경전의 말씀을 보자.

 

‘덕본이여, 의타기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을 반연(攀緣)으로 삼기 때문에 의타기상을 알 수 있다.’

 

변계소집상은 범부 중생들이 일으키는 모든 마음의 모습들이다.

수행적 측면에서는 끊어 내야 할 대상으로, 번뇌지법에 속한다.

이러한 변계소집의 모습들은 의타기를 전제로 성립하므로 본래의 모습이나 성품이 없다.

소승에서는 번뇌를 실재하는 것으로 보지만, 대승에서의 번뇌는 비실재성을 지닌다.

 

변계소집은 비실재성을 지니며,

번뇌라 해도 실체가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유식불교의 번뇌에 대한 관점이다.

이에 대해 경전의 말씀은 계속된다.

 

‘의타기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의 집착이 없는 것을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원성실상을 알 수 있다.’

 

원성실상은 변계소집이 사라진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의 모습이다.

이를 다른 말로 불성이라 칭한다.

이 원성실상은 번뇌인 변계소집상이

의타기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중생들이 자신의 마음이 의타기임을 알아 집착이 없으면

그 마음은 곧 원성실상의 부처 마음이 된다.

이는 번뇌의 의타기성을 여의고는 원성실상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소승이든 대승이든 연기를 깨달으면 성불한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본다’고 하였다.

선가의 견성성불은 번뇌의 마음 가운데 부처 자리가 따로 있어

이를 깨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곧 연기되었다는 이치를 깨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능엄경’에 탁월한 비유가 설해진다.

‘능엄경’에서 부처님은 제자 아난에게 탁자 서랍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 보이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아난은 부처님께 비단 손수건이라고 답한다.

부처님은 비단 손수건으로 매듭을 지으며 다시 아난에게 묻는다.

아난은 이번에는 매듭이라고 답한다.

이에 부처님은 “아난이여,

비단 손수건은 어디로 가고 매듭이 되었느냐?”라고 다시 묻는다.

아난은 비단 손수건이 사라지거나 변한 것이 아니고,

비단 손수건이 매듭의 모습을 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 그대로가 부처인데

다만 육진 경계를 따라 집착하기 때문에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수행이란, 단지 육진 경계에 집착했던 마음의 매듭을 푸는 것일 뿐이며,

새롭게 불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는 의타기가 된 중생의 변계소집의 마음이

원성실상을 떠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는 법문으로,

변계소집의 의타기성에 대해 바르게 깨달으면 곧 불도의 수행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덕본이여!

모든 보살이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 원성실상을 여실히 알므로

제법의 무상법(無相法)과 잡염상(雜染相)법과 청정상법(淸淨相法)을

여실히 깨닫느니라.’

 

마음공부란 단순히 욕망을 버리고 악심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바로 모든 의식이 이 세 가지 모습과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

무상법은 의타기에 의한 마음의 모습을 떠난 것이고,

잡염상법은 변계소집에 의한 마음의 번뇌 모습이며,

청정상법은 원성실상에 의한 마음의 깨끗한 모습이다.

 

불도 수행에서 유식의 삼상과 그 관계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교설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곧 수행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53호 / 2024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4. 유식의 삼무자성(끝) -  (39) 2025.10.15
- 23. 유상교와 무상교 -  (33) 2025.10.07
- 21. 마음의 본래 성품 -  (32) 2025.09.20
- 20. 변계소집 구성 요건 -  (29) 2025.09.14
- 19. 원성실상 -  (46) 2025.09.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