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열의 해심밀경의 마음학]
- 24. 유식의 삼무자성(끝) -
불성은 실체가 아닌 무자성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적인 존재
연기·무아를 훼손하지 않아
마음만 존재한다는 관점 넘어
그조차 실체가 없음을 역설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무자성이며 공(空)이다.
마음 외에 독립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식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승의생이여, 내가 무자성성의 세 가지 깊은 이치를 밝히고자 하니,
이를 상(相)의 무자성, 생(生)의 무자성, 승의(勝義)의 무자성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이 제법의 상의 무자성인가? 곧 제법의 변계소집상이니라.
어떤 것이 제법의 성의 무자성인가? 곧 제법의 의타기상이니라.
어떤 것이 제법의 승의 무자성인가?”
‘자성’이란 고유하고 영원하며 변치 않는 본질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나’라고 여길만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실체를 자성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해 생겨나는 연기적 존재임을 강조하며,
고정된 자성을 부정한다. 이를 무자성이라 한다.
이 원리는 마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첫째, 상의 무자성은 마음의 변계소집상이 자성이 없음을 뜻한다.
중생이 품는 번뇌의 마음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무자상(無自相)이다.
따라서 그 성질 또한 무자성이다.
둘째, 생의 무자성은 마음의 의타기상이 자성이 없음을 가리킨다.
중생의 모든 마음은 스스로 발생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것에 의지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전5식은 육근과 육경을 의지하고, 제6식은 의근을,
제7식은 제8 아뢰야식을, 제8식은 제7 말나식을 의지하여 발생한다.
이처럼 모든 마음은 연기적 존재로서 무자성이다.
여기서 생의 무자성이란,
마음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기와 의타기로 인해 생겨난 것은 본질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셋째, 승의 무자성은 중생의 마음을 무자성으로 삼는 원성실상이 무자상임을 나타낸다.
부처의 마음으로 상징되는 원성실상은 의타기상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의타기상의 모든 마음에서 변계소집상이 제거될 때 드러나는 마음으로,
본질적으로 공성과 무아성을 가진다. 이를 승의 무자성이라 한다.
불성을 힌두교의 유아(有我)처럼 영원불멸의 실체나 주인으로 오해한다면 큰 오류에 빠진다.
‘종경록’은 이렇게 가르친다.
“연기는 무자성이고 무자성이 곧 불성이다.
불교의 자성은 자성이 없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다.
이를 사물에 적용하면 법성(法性)이라 하고, 마음에 적용하면 불성(佛性)이라 한다.”
불성을 실체로 여기는 수행자나 불자들은 이 가르침을 깊이 새겨야 한다.
필자가 ‘해심밀경’을 해설하며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대승의 불성론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설과 무아설을 결코 훼손하지 않는다.
잘못된 불성관으로 불성을 왜곡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허공에서 핀 꽃처럼, 환영처럼, 허공처럼, 무자상의 성품도 그러하다.
일체는 법무아의 성품이 발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은 유식삼상이 모두 무아이며 무자상임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중생의 번뇌인 변계소집상은 마치 허공에서 핀 꽃과 같다.
허공에는 꽃이 필 수 없지만, 눈병으로 인해 잠시 보이는 것처럼 그 모양은 허상이다.
그러므로 상의 무성이라 한다.
의타기상은 마치 환영과 같아,
환영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긴 적이 없기에 생의 무성이라 한다.
원성실상은 허공과 같아 청정하고 일어나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주인이 없기에 승의의 무성이라 한다.
‘해심밀경’은 무아를 거듭 강조한다.
물론 소승에서도 무아성을 논하지만, ‘해심밀경’처럼 마음을 심화해 논하지는 않는다.
‘해심밀경’은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무아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법무아는 중생의 눈앞에 펼쳐진 만물이 단지 마음에서 분별된 그림자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은 단지 마음만 존재하고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마음조차 실재하지 않는다는 데까지 이른다.
‘해심밀경’은 방대한 분량의 경전으로, 내용이 심오하고 난해하다.
이 지면에서 핵심만 골라 설명하려 했으나 끝맺지 못한 점이 아쉽다.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57호 / 2024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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