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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석가모니 근본으로 신행(信行)의 길을 돌리자” -

by 수선화17 2025. 12. 1.

[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2>

- “석가모니 근본으로 신행(信行)의 길을 돌리자” -

 

대승불교의 사상적 재정립은 출가보살에 의해 이루어졌고,

교단의 재정립은 외호를 담당했던 재가보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2강 불교교단 변천과 반야경의 출현

현재 우리가 신행하는 불교는 석가모니로부터 긴 세월의 흐름에 의한

축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축적물이 대장경이다.

대장경은 불교교단 변천에 따른 결과물을 담고 있다.

이 대장경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반야심경>이 어떤 경전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에는 방대한 대장경이 있다.

개화사에 있는 대장경만 해도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중국의 <건륭대장경(乾隆大藏經)> <적사대장경(砂大藏經)>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과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隊正新修大藏經)>

<대일본속장경(大日本續藏經)> <만자속장경(卍續藏經)>

<국역일체경(國譯一切經)>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일본어역본> 및

<티베트대장경> <미얀마대장경>의 11종이 소장되어 있다.

나는 1980년대에 <고려대장경>과 <남전대장경> 전체를 읽었고, 나머지는 비교용으로 활용했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經藏)’과 승단의 질서와 수행자의 생활에서

금해야 할 것을 기록한 ‘율장(律藏)’과 경(經)과 율(律)에 대한 연구논문을 기록한

‘논장(論藏)’을 비롯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각종 논(論)과 어록 등이 등재(登載)되어 있다.

 

위에서 열거한 대장경 가운데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과 미얀마대장경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하는 남방불교국가에서 전해져 오던 것들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 외의 한역(漢譯)이나 티베트 역의 대장경들은 모두 원시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의 전적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대장경을 다 탐독한다고 해도 깨달음이나 지혜가 성취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곧바로 해탈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장경 역시 마음의 평정이나 해탈로 나아가는 설명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장경 전체를 탐독하면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선명해지고,

수행방향도 분명해진다.

내 경험상 절대로 수행에서 물러서지 않는 불퇴위(不退位)에 도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야심경이 어떠한 경전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대장경에 집대성되어 있는 교학적인 부분을 시기별로 설명해 본다.

전문적인 분석이 아니라 구분을 위한 개괄적 설명이다.

 

원시불교(原始佛敎)란

석가모니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전승되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불교(初期佛敎) 또는 근본불교(根本佛敎)라고도 한다.

용어는 모두 학자들에 의해 정해진 것인 만큼 용어마다

가리키는 바가 다르기에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는 석가모니께서 세상에 머무시던 기간부터

직계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까지로 보기도 하고,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나누어지기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 중도, 삼법인(사법인), 오온, 십이처, 십팔계,

사제, 삼학(三學),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등과 계율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부파불교(部派佛敎)란 일반적으로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시고 100년 정도가 흐른 뒤

승단(교단)이 두 파로 나누어지는 시기부터 다시 18개부파가 더 분열된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소승불교(小乘佛敎) 또는 아비달마불교(阿毘達摩佛敎)라고도 하는 이 시기는

각 부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서(論書)가 대량 저술되는 시기이다.

부파가운데 일부는 대승초기까지 존속되었는데,

예컨대 바수반두스님(Vasubandhu, 世親菩薩, 400~480)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구사론(俱舍論)>을 지었다.

이후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비롯한 많은 논(論)을 지었다.

대승불교의 시작을 대개 기원전 1세기경으로 보는데,

5~7세기까지도 부파불교의 일부가 존속했다는 뜻이다.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만든 용어이다.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이 전문적인 논서의 연구에만 치중하면서

재가불자들과 멀어진 것을 두고 자리(自利)에만 치중하는

‘작은 수레’ 즉 히나야나(Hna-yna)라고 지칭한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테라바다(Theravada) 즉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에 대해 ‘자신의

깨달음만을 중시한 불교’라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무시하려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다.

자신의 깨달음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이미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도 없다.

싯다르타도 깨닫기 전에는 교화를 한 적이 없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이 교학연구에 치중하면서

재가불자들의 신행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다면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되었지만,

부파불교의 수행자들은 각종 논문저술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신도들과 멀어졌다.

그 논물들도 출가자 외에는 읽기도 어려운 난해한 것들이었다.

오늘날의 출가자도 거의 읽지 않는 그런 논서(論書)들이

당시의 재가불자들에게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결국 재가불자들은 석가모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부처님의 사리탑을 찾아가는 불탑신행(佛塔信行)을 하게 되었고,

점차 조직화되면서 자신들을 보살단(菩薩團, Bodhisattva-gana)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이 보살단에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이 함께 하게 되었는데,

출가보살인 스님들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을 다시 강조한 대승경전을 편찬하게 된다.

수행과 깨달음을 핵심으로 하는 경전인 유마, 반야, 법화, 열반, 화엄 등의

수많은 경전들이 만들어졌고, 경전을 뒷받침하는 대승의 논(論)들도 대거 집필되었다.

우리가 흔히 보살이라고 존칭하는 용수, 미륵, 무착, 세친, 마명 등은 모두 출가한 스님들이었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의 사상적 재정립은 출가보살에 의해 이루어졌고,

교단의 재정립은 외호를 담당했던 재가보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살펴본 바대로 반야심경이 속하는 반야부경전(般若部經典)은 대승불교의 전기에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라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 제기되었다.

동양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인물은 일본의 불교학자인

무라카미 센조(村上專精, 1851~1928)였다.

학계에서는 이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경전의 핵심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불경(佛經)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처님의 말씀이 문자화된 것은 부처님 열반 후 거의 400년쯤 뒤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 기록된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졌던 것이었으니,

단어나 문장만을 따진다면 초기경전도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언어적인 표현에 너무 무게를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승경전의 목적은 부파불교에서 다소 옆길로 빠진 불교 신행(信行)의 길을

석가모니의 근본으로 되돌리자는 것이었다.

 

[불교신문 3855호/2025년1월21일자

 송강스님 I 서울 개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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