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8> “공(空)의 이치가 있음으로 모든 존재가 성립한다” -
부처님께서는 모든 견해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공(空)의 이치를 말씀하셨다.
만일 다시 공이 있다는 견해를 갖는다면 모든 부처님이 그를 교화하지 못한다.
공(空)이나 공성(空性)은 어떤 특수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편견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부처님 말씀이다
제18강 공(空)과 기존의 교리를 대비시키면서 설명 1.
(다)공(空)과 기존의 교리를 대비시키면서 설명 1.
①공(空)과 중도(中道)의 관계
‘사리자여(舍利子),
이 모든 존재의 공한 상태란(是諸法空相)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不生不滅),
더렵혀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不垢不淨),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不增不減).’
이 구절을 접할 때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설파한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2~3세기)스님의 <중론(中論)>이다.
출가 전 혼자 화두를 참구하길 몇 년 만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출구도 없는 무쇠상자에 갇히는 화두병(話頭病)에 걸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미칠 지경이 되어
스승님을 찾아가 출가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님께서는 내 병을 다 아신다는 듯 밭 만드는 일을 비롯한
1인10역의 노동중심 수행법(勞動禪, 動中禪)을 제시하셨다.
하루 두 시간의 수면을 제외하고는 노동과 기도 및
스님 시중들기로 20여 시간을 보내길 1년 반 정도 했을 때,
나는 비로소 화두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해 1975년에 스승님은 탄허큰스님 번역 <육조단경(六祖壇經)>과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중관사상(中觀思想)> 및 <능엄경(楞嚴經)>을 선물로 주셨다.
출가 후 나 스스로 불서(佛書)를 비롯한 일체의 책을 멀리하였는데,
화두병에서 벗어나자 스승님께서 세 가지 불서(佛書)를 주시면서
“이제 이 책을 봐도 될 것 같네!”라고 하셨던 것이다.
출가 전에 이미 <육조단경>은 여러 번 읽었는데,
화두병을 타파한 뒤에 스승님께서 주신 것을 읽었을 때는,
이전에 비해 육조 혜능선사의 그 마음이 선명하게 다가왔었다.
동시에 스승님께서 “이제 이 책을 봐도 될 것 같네!”라고 하신 마음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어 펼쳐 든 <중관사상>은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을 포함해
총 11종의 논(論)을 모은 것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중론>을 펼치자
‘제1 관인연품(觀因緣品)’ 첫 번째 게송이 다음과 같았다.
불생역불멸(不生亦不滅) 불상역부단(不常亦不斷)
불일역불이(不一亦不異) 불래역불출(不來亦不出)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지속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고 차이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아니하고 나가지도 아니한다.
능설시인연(能說是因緣) 선멸제희론(善滅諸戱論)
아계수예불(我稽首禮佛) 제설중제일(諸說中第一)
능히 이런 인연법을 말씀하시어
모든 허망한 희론 잘 없애주시니
모든 말씀 가운데 으뜸이시라
머리 숙여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앞의 게송에서 불생(不生)·불멸(不滅)·불상(不常)·부단(不斷)·불일(不一)·
불이(不異)·불래(不來)·불출(不出)을 일컬어 팔부중도(八不中道)라고 일컫는데,
이는 중도에 여덟 가지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네 종류의 서로 상대적인 편견(여덟 가지)을
부정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중도(中道)란 일체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지를 일컫는 것인지라,
무엇이라고 규정을 하는 순간 이미 중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부정하는 방식으로 중도를 설명하고 있다.
편견이라는 것은 무수한 것인지라,
그 무수한 편견을 낱낱이 부정하는 표현을 계속할 수 없어서,
여덟 가지로만 언급한 것이다.
그 다음의 네 구절 게송(四句偈)을 보면
<중론>을 집필한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스님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나가르주나스님은 흔히 용수보살(龍樹菩薩)로 존칭될 만큼
부처님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신 분이다.
그럼에도 <중론>을 집필하는 것이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부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팔부중도(八不中道)’로 표현된 중도(中道)의 가르침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能說是因緣)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서 중론을 집필하는 것도 부처님의 갖가지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한
가르침(善滅諸戱論)을 밝히기 위한 것임도 강조했다.
<중론(中論)>에서는 공(空)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제13 관행품(觀行品) 제8구에 ‘만약 공하지 아니한 존재가 있다면(若有不空法)
곧 공한 존재가 있어야 마땅하나(則應有空法),
참으로 공하지 아니한 존재가 없는데(實無不空法)
어찌 공한 존재가 있겠는가(何得有空法)?’라 하였다.
다시 제9구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견해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공의 이치를 말씀하셨다(大聖說空法 爲離諸見故).
그러나 만일 다시 공이 있다는 견해를 갖는다면
모든 부처님이 그를 교화하지 못하신다(若復見有空 諸佛所不化).’고 하였다.
제9구의 ‘공법(空法)’에 해당하는 산스끄리트본의 단어는
‘순야따(śūnyatā)’로 대개 ‘공성(空性)’으로 번역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비어있음의 이치’라고 풀이한다.
따라서 공(空, śūnya)은 ‘비어있음’으로 번역하였고,
공성(空性, śūnyatā)은 ‘비어있음의 이치’로 번역하였다.
다음 제24 관사제품(觀四諦品) 제11구에 ‘공을 바르게 관할 수 없기에
둔한 근기는 스스로를 해친다(不能正觀空 鈍根則自解).
잘못 익힌 주술이나 잘못 잡은 독사와 같이(如不善呪術 不善捉毒蛇).’라고 했다.
또 제14구에는 ‘공의 이치가 있음으로써 모든 존재가 성립한다(以有空義故 一切法得成).
만일 공의 이치가 없다면 일체가 성립되지 않는다(若無空義者 一切則不成).’고 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공(空, śūnya)이나 공성(空性, śūnyatā)은 어떤 존재가 아니다.
모든 편견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특수한 존재로 착각한다면 구제불능이다.
중도도 또한 그러하다.
모든 편견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제 <반야심경(般若心經)>으로 돌아가 보자.
‘비어있음의 특징(空相)’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不生不滅),
더렵혀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不垢不淨),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不增不減).
‘여기에서 다시 생과 멸(生滅),
더럽고 깨끗함(垢淨) 증과 감(增減)을 따지고 있다면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대자대비로도 그를 제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74호/2025년6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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