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5> “오로지 괴로움(苦)으로부터 해탈(解脫)하여
깨달음의 적멸(寂滅)에 이르고자 합니다” -
괴로움(苦)이 시작되는 것은
나’에 대한 그릇된 집착 때문이다.
만약 ‘나’가 없거나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 어떤 것도 괴로움이 되지 않는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제15강 오온개공을 거듭 밝힘.
(나)오온개공(五蘊皆空)을 교차하며 설명.
②색(色)과 공(空)에 대한 바른 고찰
[나] 사리자여(舍利子), 몸은 비어있음과 다르지 않고(色不異空)
비어있음은 몸과 다르지 않아서(空不異色),
몸이 곧 비어있음이요(色卽是空)
비어있는 것이 곧 몸이니라(空卽是色).
받아들이기(受)·모양그리기(想)·의지적 행위(行)·인식작용(識)도 또한 그러하니라(亦復如是).
비불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일 것이다.
개화사를 방문한 타종교의 지도자들까지도 불교를 잘 안다는 듯이
이 구절을 외면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고 풀이까지 해 준다.
그들이 내게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은 정확한 이치를 배우고자 하는 뜻이 없기 때문이기에,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괜스레 체면 구겼다고 기분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色)과 공(空)에 대한 잘못된 해석
(1)색(色)에 대한 잘못된 해석
<반야심경>에서의 색(色, Rūpa)은 오온(五蘊)에 속하는 것이며,
오온(五蘊)이란 어리석은 사람들(衆生)이 ‘나’라고 잘못 알고
집착하는 몸(色)과 심리작용(受想行識)의 다섯 가지 요소이다.
따라서 색(色)은 오온 가운데 하나인 몸(육체)을 가리킨다.
색(色)의 사전적인 뜻은 ‘물질 일반’을 비롯해 다양하다.
그러나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의 ‘나’라는 집착을 살핀다면 당연히 몸이어야 하며,
그것도 ‘나의 몸’이라고 집착하는 대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색(色)을 물질로 번역하면서 ‘있는 것(有)’이라는 뜻으로까지 변질되었다.
그래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해석까지 범하게 되었다.
(2)공(空)에 대한 잘못된 해석
공(空)에 대한 첫 번째 오류는 ‘없음(無)’으로 풀이한 것이다.
앞의 색(色)을 ‘있음(有)’으로 풀이한 오류와 공(空)을 ‘없음(無)’으로
풀이한 오류가 합해져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空)에 대한 두 번째 오류는 ‘있음이 곧 없음’이라는 오류에서 보이듯,
색(色)의 반대개념으로서의 존재성으로 공(空)을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열여덟 가지 공(十八空)으로 세분화시키면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통찰을 오히려 분산시켜 놓았다.
특히 ‘공의 원리’를 가리키는 공성(空性, 순야따 śūnyatā)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잘못 인식하는 오류도 범한다.
색(色)과 공(空)에 대한 바른 이해
(1)색(色)에 대한 바른 이해
<반야심경>에서의 색(色, Rūpa)은 몸(육체)이다.
불교의 목적은 오로지 괴로움(苦)으로부터 해탈(解脫)하여
깨달음의 적멸(寂滅, 涅槃)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苦)이 시작되는 것은 ‘나’에 대한 그릇된 집착 때문이다.
만약 ‘나’가 없거나 또는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 어떤 것도 괴로움이 되지 않는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육체의 기본요소를 크게
흙(地)·물(水)·불(火)·바람(風)의 네 가지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현대의학에서는 해부학 등을 통해서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엄청나게 복잡한 인체에 대한 설명만을 들으면서 애착을 버리고 해탈할 수 있을까?
불교경전에서는 몸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기 위해 불결한 측면까지 설명하고 있다.
피부 아래에는 피고름이 가득하고, 입과 목에는 침과 가래가 차 있다.
위(胃)와 장기(臟器)에는 음식물 찌꺼기를 비롯해 똥오줌이 가득하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몸의 불결함을 깊이 살피는 부정관(不淨觀)은 몸에 대한 애착을 끊기 위해서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백골관(白骨觀)이 있는데,
이는 숨이 끊어지는 순관부터 시체의 부패→팽창→터짐→
벌레 들끓음→뼈만 남음→뼈 삭음 등의 과정을 빠짐없이 살피는 것이다.
이 또한 몸에 대한 애착을 끊어 몸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수행법이다.
(2)공(空)에 대한 바른 이해
공(空)의 산스끄리뜨어는 순야(śūnya)로 비어있음(虛), 비존재(非存在)의 뜻이다.
한역(漢譯)에서는 공(空), 공무(空無), 공허(空虛), 공의(空義), 공한(空閑) 등으로 옮겼다.
이 비어있음(空)의 사상은 대승(大乘)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근본불교에서 공(空)의 근거를 찾자면 연기법(緣起法)과 제법무아(諸法無我) 및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 볼 수 있다.
연기법(緣起法, prattyasamutpda)
산스끄리트어 쁘라띠뜨야사무뜨빠다(pratītyasamutpāda)의 한역(漢譯)을 보면
연기(緣起), 연생(緣生), 연기법(緣起法), 연생법(緣生法), 인연법(因緣法),
중인연생법(衆因緣生法), 종중연생법(從衆緣生法), 연기이취(緣起理趣) 등으로 옮겼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 직관지(直觀智)로 보신 이치로,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의지하고 관계를 갖으며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원히 고정불변한 유일한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연기법의 핵심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此無故披無).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기고(此生故皮生),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此滅故彼滅).’
불교의 교설은 바로 이 간단한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전개되는데,
공(空)의 이론도 바로 이 연기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존재에는(sarvadharmā) 아뜨만이 없다(anātman)’는 뜻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이 경우 제법(諸法)과 무아(無我)는 붙여서 사용해야 하는데,
무아(無我)만 따로 사용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괴로울 때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선택하면 모두 해결되기 때문이다.
제법무아란 모든 존재(諸法)가 인연으로 생성 소멸되기에 고정적이고
불변인 개체가 없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공(空)으로 연결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행(行)은 ‘형성된 것들’이라는 뜻의 삼스까라(saṁskārā)를 한역(漢譯)한 것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은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영원불변한 것이 없이 끝없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것도 비어있음의 공(空)과 통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색(色)과 공(空)에 대한 고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꿰뚫어 보아야 하기에,
깨달음의 직관지(直觀智)가 아니면 명확한 이해조차 어렵다.
따라서 관자재보살의 직관지(直觀智)를 증득하기 위한 수행이 병행되어야
색(色)과 공(空)의 관계를 바로 볼 수 있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70호/2025년5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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