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9> “지혜의 완성에서 관찰된 공(空)은 몸과 심리작용(五蘊,의 본질적 모습” -
어떤 경우라도 몸과 심리작용이 괴로움이 되지 않는 경지를 해탈이라고 하며,
비어있음(空) 또는 지혜라고도 한다.
지혜는 고정된 어떤 것도 없이 텅 비어 밝다.
그러므로 비어있음(空)에는 몸과 심리작용(五蘊)이 없는 법!
제19강 공과 기존의 교리를 대비시키면서 설명 2.
(다) 공과 기존의 교리를 대비시키면서 설명 2.
②공(空)에는 오온(五蘊)이 없다.
‘이런 까닭에(是故) 비어있음 가운데는 몸이 없고(空中無色),
비어있음 가운데는 받아들이기·이미지그리기·의지적 행위·인식작용이 없다(無受想行識).’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초두에 ‘관자재보살께서 깨달음의 지혜완성을 이루었을 때
오온(五蘊)이 빈 것임을 완벽하게 깨닫고는, 일체의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공(空)은 지혜의 완성에서 관찰된 ‘몸과 심리작용(五蘊)’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지혜의 완성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해탈한 이의 철저한 개인적 직접지각이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몸과 심리작용(五蘊)’이 비어있음(空)을 보는 것도
역시 깨달은 이의 개인적인 직접지각일 뿐이다.
이 깨달음에 이른 이의 직접지각을 옆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그가 일체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지를 보면 된다.
누구나 무르익어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버리면(度一切苦厄)’ 얼마나 좋겠는가.
최상근기(最上根機)의 사람은 여기에서 깨달아 해탈한다.
근기(根機)란 수행의 결과로 도달된 현재 마음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
최상근기(最上根機)란 깨달음 직전의 경지에 도달된 상태이다.
모두가 이 경지에 있다면 반야심경(般若心經)은 여기에서 끝나도 된다.
허나 그렇지 못하니 반야심경(般若心經)도 설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깨닫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달은 이의 설명(설법, 법문)을 듣고
짐작하는 간접지각(간접경험, 관념)에 머물고 만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혜의 완성도 이루지 못했고,
오온(五蘊)이 공(空)함도 잘 모른다는 뜻이다.
잘 모르기에 비어 있다는 뜻의 공(空)은
‘없다(無)’는 뜻과 같겠구나하는 엉뚱한 추측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처방이 관자재보살이 지혜의 완성에서 깨닫게 된(照見)
이치인 오온(五蘊)과 비어있음(空)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자상하게 풀이해 주고 있다.
‘몸은 비어있음과 다르지 않고(色不異空) 비어있음은 몸과 다르지 않아서(空不異色),
몸이 곧 비어있음이요(色卽是空) 비어있는 것이 곧 몸이니라(空卽是色).
받아들이기(受)·모양그리기(想)·의지적 행위(行)·인식작용(識)도
또한 그러하니라(亦復如是)’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의 상상근기(上上根機)라면 이 구절에서 깨달아 해탈한다.
여기에서만이라도 깨달으면 또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러지 못하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긴다.
‘오온과 공이 다르지 않고 공이 오온과 다르지 않으며,
오온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오온이다’라고 했으니,
대체 깨달은 이가 통찰한(照見, 깨달은) 비어있음(空)은 어떤 모양(相)이란 말인가?
‘아주 미묘하고 독립된 존재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의 비어있는 상태란(是諸法空相)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不生不滅),
더렵혀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不垢不淨),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不增不減)’라고 하여
‘모든 존재의 비어있음의 상태(諸法空相)’를 정리한 것이다.
세 번째의 상중근기(上中根機)라면 이 정도로 보여줄 때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깨닫지 못하고 의심이 남아 있다면,
이제 네 번째 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을 펼칠 수밖에 없다.
앞의 ‘오온과 공이 다르지 않고(五蘊不異空) 오온이 곧 공이며(五蘊卽是空),
공이 오온과 다르지 않고(空不異五蘊) 공이 곧 오온이다(五蘊卽是空)’라는
설명에서 또 다른 의심을 일으킨 사람들,
즉 ‘비어있음에는 갖가지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제 관자재보살이 깨달은(照見, 통찰한) 이치(理, 원리)인 비어있음(空)에는
그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해 주는 것이다.
오온(五蘊)과 공(空)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이지만,
공(空)에 오온(五蘊)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비어있음인 공(空)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부분
즉 공중무색(空中無色)에서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까지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처럼 깨달은 이가 ‘몸과 심리작용(五蘊)’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빈 것임을 완벽하게 깨달았다(照見五蘊皆空)는 그 깨달음의 내용(이치)인
‘비어있음(空)’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배워서 머릿속에 관념적으로 가득한 교리(敎理)에 대한 집착을 부수어 버림으로 해서
수행자로 하여금 용맹정진(勇猛精進)케 하여 해탈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비어있음 가운데는 (고정 불변하는) 몸이 없고(空中無色),
(비어있음 가운데는 고정 불변하는)
받아들이기·이미지그리기·의지적 행위·인식작용이 없다(無受想行識)’ 는 가르침이다.
위의 내용을 두고 ‘비어있음(空)’ 또는 ‘비어있음의 이치(空性)’를 깨달은 이에게는
몸과 심리작용이 사라진다거나 몸과 심리작용이 쓸모없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께서 깨달아 석가모니가 되신 후에 몸도 마음도 없어진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이 되시기 전에는 생사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갖가지 수행을 하셨지만,
성불하신 뒤에는 오직 지혜만 있을 뿐 일체의 어리석음이나 집착이 없었고 괴로움이 없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몸과 마음작용을 쓰셨지만,
몸도 마음도 지혜와 자비를 펼치는 도구요 수단이었을 뿐이다.
깨달음에 의해 통찰된 ‘비어있음에는 몸과 심리작용이 없다(空中無五蘊)’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좀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근래 내게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2024년 9월28일 토요일 무량수전 뒤 계단식 정원에
30여명의 불자들과 함께 울력(운력, 雲力)을 할 때였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며 몸이 균형을 잃고 등이 바위로 떨어졌는데,
30분 정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심한 통증이 몰려왔기에 그날부터 25일간 잠을 잘 수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삼매에 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25일 철야용맹정진을 하게 되었다.
낮에는 주 3회 정도의 법회, 매일 이어지는 다회,
중요의식에서의 염불, 원고작성 등의 일과를 평소처럼 소화했다.
이 글을 쓰는 2025년 6월까지 아직 통증이 남아 있고 등과 허리는 바위처럼 무겁지만,
그로 인한 어떤 괴로움도 없다.
30년 이상 제대로 수행한 대부분의 스님들이나 특별한 재가불자라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괴롭지 않을 것이다.
불편함과 괴로움은 다르다.
이처럼 어떤 경우라도 몸과 심리작용이 괴로움이 되지 않는 경지를 해탈이라고 하며,
비어있음(空) 또는 지혜라고도 한다.
지혜는 고정된 어떤 것도 없이 텅 비어 밝다.
그러므로 비어있음(空)에는 몸과 심리작용(五蘊)이 없다고 한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75호/2025년6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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