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7>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비어있음(空)이요 비어있는 것이 수상행식” -
유식에서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은 깊은 수행에 의해
중생의 특징인 심·의·식이 비어있음(空)을 깨달아,
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로
탈바꿈(轉變)될 때 가능해진다.
제17강 오온개공을 교차하며 설명
(나) 오온개공(五蘊皆空)을 교차하며 설명.
④수상행식(受想行識)과 공(空)의 관계
‘받아들이기(受)·모양그리기(想)·의지적 행위(行)·인식작용(識)도
또한 그러하니라(亦復如是).’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심리작용인 수·상·행·식(受想行識)과
보이지도 잡히지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비어있음(空)의
관계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참으로 이해했다면 비록 깨닫지는 못했다하더라도
괴로움(苦)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수상행식역부여시(受想行識亦復如是)는 너무 간단하기에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생략된 부분을 되살려 구체적으로 관찰해 보면 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수불이공(受不異空) 공불이수(空不異受) 수즉시공(受卽是空) 공즉시수(空卽是受)’
이 수(受)의 자리에 상·행·식(想行識)을 차례로 넣어서 자세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바로 앞에서 몸(色)과 비어있음(空)의 관계를 설명했다.
몸(色)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기에 비어있음(空)과의 극적인 대비가 되어,
어떤 점에서는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받아들이기(受)·모양그리기(想)·의지적 행위(行)·인식작용(識)은
전문적인 식견(識見)이나 ‘마음의 눈(心眼)’으로만 알 수 있는 심리작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 네 가지는 심리작용이 진행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두부 자르듯 확연히 구분 짓기도 쉽지 않다.
수·상·행·식(受想行識)은
급한 계곡물처럼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행·식(受想行識)을 명확히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도 사전이나 교리책에서 설명한 것을 이해한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일체의 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려서
자기의 내면을 끝없이 관찰한 경험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일상에서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종합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차(茶) 마시는 상황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심리작용의 흐름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최고의 불교심층심리분석서인 <유식론(唯識論)>을 활용한다.
세분화하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차를 마시기 위해 포장을 만나면 먼저 눈(眼根)이 차 통 또는 차 봉지를 본다.
이때 인쇄된 그림과 글자와 모양 등 눈의 대상(色境)을 눈의 인식주체(眼識)가 인지(認知)한다.
동시에 통이나 봉지(觸境)를 손으로 만질 때는 피부의 인식주체(身識)가 손의 느낌을 인지한다.
이어서 마른 찻잎(乾茶)을 대할 때,
다음 탕관에 물을 끓이고 다기에 따를 때,
다시 차를 우릴 때나 마실 때에 복잡한 과정이 일어난다.
즉 눈·귀·코·혀·살갗(眼耳鼻舌身)이 색과 모양·소리·냄새·맛·촉감을 만날 때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많은 것들을 인지한다.
그런데 위 얘기에서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인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
받아들이기(受)·모양그리기(想)·의지적 행위(行)·인식작용(識)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는 심리작용이다.
특징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네 단계로 정리하긴 했으나,
사실 각각은 또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컨대 받아들이기(受)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고도 하며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운 느낌(苦受), 덤덤한 느낌(不苦不樂受)으로 크게 나눈다.
그런데 감수작용이 과연 셋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찰나마다 대상이 바뀔 때마다 끝없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받아들이기(受)이다.
뒤따르는 상·행·식(想行識)도 역시 끝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파도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어느 것을 ‘이것이다’고 고정시킬 수 있겠는가.
위에서 설명한 것은 사실 실제로 일어나는
복잡한 심리작용에 비하면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복잡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은 거의 찰나에 일어나는 것이며,
그 다음 찰나에는 또 다른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전개되는 것이다.
앞에서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쏜살같이 흐르는 급한 계곡물에 견주어 설명했지만,
사실은 어떤 급류보다도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
그러니 쉬지 않고 끝없이 변하는 수·상·행·식(受想行識) 역시 비어있음(空)과 다르지 않고,
비어있는 것(空)이 수·상·행·식(受想行識)과 다르지 않다.
이 도리를 확실하게 이해하여 깨달음에 이르면,
수·상·행·식(受想行識)이 곧 비어있음(空)이요
비어있는 것(空)이 곧 수·상·행·식(受想行識)인 것이다.
<반야심경>에서의 ‘식(識)’은 인식작용을 가리키며,
<유식(唯識)>에서 설명하는 인식주체로서의 심왕(心王)인
여덟 가지 식(八識)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즉 인식작용인 심소(心所)로 볼 수 있다.
5세기경의 위대한 수행자인 아상가(Asaṅga, 無着)스님과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스님에 의해 완성되는 유식(唯識)은
현재까지도 가장 깊고 위대한 심층심리에 대한 연구로,
현대의 심리학에서도 이 유식(唯識)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할 정도이다.
두 분은 보살(菩薩)로 존칭될 만큼 깊고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들로,
스스로 체득한 경지에서 설명한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유식(唯識)에 대해서는 ‘오직(唯) 식(識)만 인정한다’는 설명이 따르는데,
이는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불교는 괴로움(苦)으로부터의 해탈이 목적이다.
해탈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느끼는 당체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식(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식(識)을 분석한 후,
적절히 수행케 하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유식(唯識)에서는 심(心)·의(意)·식(識)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제8아뢰야식·제7말나식·제6의식과 전오식(前五識)이다.
제6의식은 전오식과 더불어 감각기관이 만나는 대상과
제8식에 있는 이전의 정보에 의해서 분석하고 추리하며 통합해서 판단을 내린다.
제7말나식은 제6의식의 의지처가 되면서 제8식과의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말나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잘못된
‘나’에 대한 집착과 망견(妄見)을 일으켜서 잘못된 생각의 파장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한다.
제8아뢰야식은 과거의 체험과 업(業)을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하면서 과보로서 작동한다.
또한 미래에 어떤 상황을 만들어 내는 씨앗(種子)이 되며,
동시에 제7식에 의해 아집(我執)의 대상이 되어 윤회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유식(唯識)에서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깊은 수행에 의해 중생의 특징인 심·의·식(心意識)이 비어있음(空)을 깨달아,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로
탈바꿈(轉變)될 때 가능해진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72호/2025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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