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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32>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별말고 하나로 품어야” -

by 수선화17 2024. 4. 14.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32>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별말고 하나로 품어야” -

 

제61화 본능 그리고 오욕락(五慾樂)

본문

요급상응(要急相應) 유언불이(唯言不二)

재빨리 대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 아님 만을 말하라.

 

강설

이 구절 또한 분별(分別)하지 말라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대상을 대하고 만나더라도,

좋고 싫은 감정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오욕락(五慾樂)에 있어서 고락(苦樂)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먼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가운데 수면(睡眠-잠)이 있다.

누구나 잠을 자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잠이 오면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자면 된다.

일이 있는데 잠을 자서 때를 놓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면 잠을 자지 않으면 된다.

잠을 못 자면 몸에 이상이 생겨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이 생길 때,

재빨리 둘 아님을 깨달아서

잠을 자거나 자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잠은 오는데 잠을 자거나 늦게 일어나서 할 일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걱정 근심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잠을 너무 많이 자도 문제지만 잠이 오지 않아 불면증을 앓는 사람도 많다.

참선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잠이 오는 수마(睡魔)다.

잠은 본능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자지 않고 버틸 수는 없다.

그러나 잠이라는 것도 활동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내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이 또한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를 면치 못한다.

활동을 통해 욕심을 채우면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게 되고 반대로 얻지 못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된다면 괴롭고 슬픈 과보(果報)가 똑같이 생긴다.

이와같이 즐겁고 괴로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 업(業)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고락(苦樂)의 두 가지 인과(因果) 업(業)을 멸해야 중도(中道)의

한량없는 마음이 되어 고통과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행동만 해야 한다.

잠을 자지 않고 작게 먹으며 무소유해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것 등이다.

즉 본능에 해당하는 오욕락(五慾樂)인 수면욕(睡眠慾), 식욕(食慾),

재산욕(財産慾), 성욕(性慾), 명예욕(名譽慾)을 최소화해 분별하지 않음으로써

고락(苦樂)의 인과(因果) 업(業)을 받지 않기 위한 수행을 한다.

 

잠 자는 것, 먹는 것, 재산을 모으는 것, 이성과 교제하는 것,

나를 알리는 것, 고락(苦樂)의 인과(因果) 업(業)에 묶여 있다.

따라서 결국 좋고 나쁜 것이 인과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므로

결코 고락(苦樂)이 둘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일에 있어서나 어떤 대상을 만나고 어떻게 살더라도

좋고 나쁜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모습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결코 두 가지가 아니라 한 몸에서 나온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성내거나 옳고 그른 시비(是非)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요급상응(要急相應-재빨리 대응하고자 한다면)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순간순간 바로바로 유언불이(唯言不二-오직 둘 아님 만을 말하라)해야 한다.

즉 항상 좋다 싫다의 분별하는 감정을 갖지 말아야 한다.

 

바라는 마음도 내려놓고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어쩌나,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하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과 분별심을 지금 당장 내려놓아 방하착(放下着)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머리를 쓰고 요령과 재주를 부린다 해도

모두가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를 면치 못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도 고락의 인과에 걸리고,

저렇게 해도 고락(苦樂)의 인과(因果)에 걸리기 때문이다.

 

모든 의심과 집착을 내려놓아 인과(因果) 인연에 맡기기만 하면 된다.

이는 바로 부처님 법에 귀의하는 것이고,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참다운 기도와 참다운 참선이자 진정한 보시이며 용맹한 정진이 된다.

 

송(頌)

이렇게 해도 고락(苦樂) 인과(因果)요

저렇게 해도 고락 인과에 걸리니

이렇게 해도 마음 내려놓고

저렇게 해도 마음 내려 놓으면 고통 끝.

 

제62화 속상해 죽을 것 같을 때

본문

불이개동(不二皆同) 무불포용(無不包容)

둘이 아니고 모두가 같아서 품지 않을 수 없다.

 

강설

손을 손등과 손바닥으로 구분할 수는 있으나 손 하나로 보는 것과 같이,

원인과 결과의 인과를 둘로 나눌 수는 없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낮이 오면 밤도 오고 밀물은 썰물이 되고 태어나면 죽고,

어린 시절은 늙은 시절을 만들고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덩달아 생기니

이는 둘이라 할 수 없고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다.

 

중생 특히 사람의 삶이란 그 누구라도 좋은 것을 모두 합한 것과

나쁜 것을 모두 합한 것은 한치의 차이도 없이 모두 똑같다.

다만 좋은 것이 나타나는 때와 나쁜 것이 나타나는 때가 서로 다를 뿐이다.

어느 때이건 어디에 있던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좋은 마음의 업이 생길 때가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마음의 업이 생길 때가 되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모든 중생은 누구나 좋은 업과 나쁜 업의 차이가 없다.

좋은 업의 마음이 작으면 나쁜 업의 마음도 작고

좋은 업의 마음이 크면 나쁜 업의 마음도 크다.

최고로 좋은 즐거움을 맛보았다면 최고로 나쁜 괴로움도 맛보게 되고

좋은 것을 맛보지 않았다면 나쁜 것도 맛보지 않게 되는 것을 인과의 과보라고 했다.

 

그러므로 최고로 좋은 극단의 즐거움은

최고로 나쁜 극단의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참선수행자와 같이 좋은 것을 전혀 맛보지 않는다면

나쁜 것도 전혀 맛보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를 해탈 또는 자유자재라 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인과의 과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끝없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기 자신을

고통과 괴로움 속으로 끌어 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저렇게 나타나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렇게도 없는 것이다.

이는 결코 둘이 아니라 모두 같은 것이어서 이를 모두 품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하나를 얻지 않음으로써 하나를 잃지 않는 것을 선택하든지 말이다.

 

속이 상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매우 기쁜 때가 있었다는 인과의 증거다.

그러므로 속이 상하는 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는 고락업의 인과 문제다.

그러니 외부를 탓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꼴에 지나지 않으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마음이 우울하여 몹시 기분이 좋지 않다면 이를 즉시 깨달아서

‘언젠가 내가 기분이 매우 좋았던 때의 과보가 이제 나타났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또 남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도둑을 당해 기분이 몹시 나쁘고 속이 너무너무 상한다면

이 또한 ‘내가 과거에 남의 물건을 탐냈거나 내 것을 만들어서

기분이 몹시 좋았던 때의 과보로구나’ 하고 즉시 관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속상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이 또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

 

때문에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별하지 말고 둘로 보지 않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즐거운 일, 기쁜 일이 있으면 괴롭고 슬픈 일 또한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를 하나로 보고 품어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송(頌)

손바닥과 손등이 한 몸이듯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일년이듯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이 한 몸에서 나오니

이를 분별(分別) 선택하지 않고 모두 품어야 하리.

 

[불교신문 3789호/2023년10월10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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