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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33> “10개의 좋은 것 생기면 10개의 나쁜 것 똑같이 생긴다” -

by 수선화17 2024. 4. 16.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33> “10개의 좋은 것 생기면 10개의 나쁜 것 똑같이 생긴다” -

 

제63화 스트레스 받지 않는 법

본문시방지자(十方智者)

개입차종(皆入此宗)

온 세상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와 같은 근본으로 들어온다.

 

강설

시방은 동서남북 중앙의 5방과 상하를 합친 것이다.

그러니 시방 밖에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개입차종(皆入此宗)의 종(宗)은 종교의 의미인데,

최종의 궁극적인 지혜 자리를 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아는 이를 말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현상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유위(有爲) 세계라고 한다.

유위(有爲)란 결국 있는 것처럼 생각되나 사실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계를 말한다.

 

좋고 즐겁고 행복한 ‘이것’이 생기면, 나쁘고 싫고 괴롭고 불행한 ‘저것’도 함께 생긴다.

따라서 이것이 한번 생기면 저것도 한번 생기는 인과(因果)를 벗어날 길이 없다.

따지고 보면 1 빼기 1은 0이 되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10개의 좋은 것이 생기면 10개의 나쁜 것이 똑같이 생긴다.

삼세인과(三世因果)의 관점에서 본다면 좋은 감정,

좋은 일의 총합(總合)과 나쁜 감정,

나쁜 일의 총합(總合)이 똑같아 플러스 마이너스 = 0 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무위(無爲) 또는 공(空), 무(無),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 1백만원이 생겼다고 한다면 1백만원 만큼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1백만원은 반드시 나가게 되거나 잃게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때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1백만원이 생겼을 때 좋고 나쁜 기분이 없다면

1백만원이 설사 사라진다 해도 이때의 기분 또한 좋고 나쁨이 없을 것이다.

전자의 기분은 범인(凡人)의 기분이고, 후자의 기분은 지자(智者)의 기분이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 한다.

그래서 건강에 이상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오래 살려고 여러 가지 애를 많이 쓴다.

물론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을 가려 먹기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등의 갖가지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건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을 때 나타난다.

누가 되었든 상대의 사람에 의해 생겨날 때가 많다.

하지만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스트레스는 결국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것은 인과(因果)의 모습이라고 했다.

하나를 구하면 하나를 반드시 잃게 된다고 했다.

하나의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의 손해를 반드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얻으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마음의 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스트레스는 스스로의 욕심이 부른 것이기 때문에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놓으면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원하는 것을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쥐면 쥘수록 힘이 드는 것처럼

원하면 원할수록 걱정 근심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인과(因果)의 이치다.

 

이럴 때일수록 신심(信心)을 가져야 한다.

인과(因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야말로

부처님과 부처님 말씀인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과 같다.

욕심을 놓고 성냄을 놓고 망상을 놓으면 저절로 저절로 인연 따라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 대 맞고 그만 둘래”, “안 맞고 그만 둘래” 하는 것처럼

집착하고 애써도 올 것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고,

집착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갈 것은 저절로 가게 되어 있다.

 

이같이 모든 일에 있어서 결과는 모두 인과(因果) 인연에 맡기고

그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인이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근본으로 들어오는 길이라 할 것이므로,

항상 여여(如如)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최고의 방편이다.

 

송(頌)

태어나면 반드시 죽으니 0,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오니 0,

얻을 것은 반드시 없어지니 0,

이러쿵저러쿵 아무리 해봐도 결국은 0.

 

제64화 너무나 밉고 싫어질 때

본문

종비촉연(宗非促延) 일념만년(一念萬年)

본래 자리는 급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한생각이 곧 만년이다.

 

강설

종(宗)은 근본을 말하는 것으로서 ‘본래의 자리’라는 뜻이다.

본래의 자리는 분별(分別)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이다.

시간도 공간도 없으며, 문자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상 그 이상의 자리를 말한다.

 

촉연(促延)이란 때, 즉 시간을 뜻한다.

시간이란 즐거움을 구하고 괴로움을 피하려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좋고 나쁜 분별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는

시간이란 생겨날 수도 없고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단 하나라도 원하고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고,

이것과 저것의 분별된 생각이 전혀 없다면, 급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생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은 곧 멈춘다고 봐야 하고,

따라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사람이 싫어지거나 미워질 때가 있다.

때로는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 싫어할 때도 있다.

그 대상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으며 친구나 이웃, 동료가 될 수도 있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수도 없이 많다.

물론 대개는 당연히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세상의 일은 백프로 일방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불자라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일단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좋아하고 이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당연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똑같이 생기는 것이 바로 인과(因果)의 마음이라 했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이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 과보(果報)로 인하여

또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좋은 마음만큼 싫은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활짝 핀 꽃은 너무나 아름답고 이쁘지만 시든 꽃은 추하고 미울 수밖에 없다.

똑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시간적인 차이에 따라 어느 때는 좋고

이쁜 마음이 생기는가 하면 어느 때는 싫고 미운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이러한 인과(因果)의 마음이 생길 때, 이쁜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미운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했다.

 

따라서 내 마음의 좋고 이쁜 업(業)이 생길 타이밍에

이쁜 사람이 내 마음의 아바타처럼 나타나게 된다.

미운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미운 업(業)이 생길 시간에 맞춰서

미운 사람으로 둔갑하여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내 앞에 있는 나와 상대하는 사람이 본래 이쁘거나 미운 사람이 아니다.

내 마음의 이쁘고 미운 마음의 업(業)이 생기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의 아바타가

실제로 이쁘거나 미운 사람으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과 보살, 조사스님들과 같이 마음의 분별심이 없어서

좋고 싫은 이쁘고 미운 마음이 전혀 마음 안에 들어있지 않다면

좋고 이쁜 사람도 물론 나타날 리가 만무하다.

밉거나 싫은 사람 역시 당연히 나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이쁘거나 밉다고 하여 상대방과 시비(是非)를 일으킨다면,

이와 같은 업(業)이 또다시 저장되어 있다가 시절인연의 시간이 되면

똑같이 반복하여 밉고 싫은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나의 업(業)을 탓하며 참회하여

다시는 상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분별(分別)의 업(業)이 점점 멸해져서 상대를 이뻐하는 마음도 놓아지고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로서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도 놓아지게 된다.

상대방을 향해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분별심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회하고 또 참회해야 한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바로 이때 필요하다.

 

송(頌)

너가 미우냐, 내 마음이 미운 것이다.

너가 이쁘냐, 내 마음이 이쁜 것이다.

너가 좋으냐? 내 마음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남 탓하지 말고,

내 마음을 먼저 고쳐라.

 

[불교신문 3790호/2023년10월17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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