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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37·끝> “깨달음을 얻으면 감정의 업(業)이 사라진다” -

by 수선화17 2024. 4. 26.

[총무원장 진우스님 신심명 강설]

- <37·끝> “깨달음을 얻으면 감정의 업(業)이 사라진다” -

 

제71화 풍선효과

본문

단능여시(但能如是)

하려불필(何慮不畢)

다만 능히 이와 같다면

어찌 마무리하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강설

지난 구절에 “약불여차(若不如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의 여차(如此)와 이번 구절의 여시(如是)는 같은 말이다.

여차(如此)와 여시(如是)의 뜻인 “이와 같음”이란,

내 눈앞에 있는 현실 그대로를 말한다.

이는 진리 그 자체라고 했다.

 

나타나는 모든 것은 바로 원인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도 덜도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나타나는 것은 모두 필연적인 것이므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이다.

과학은 한 치 오차 없는 것을 밝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 중에 아인쉬타인이 발견한 상대성 원리가 있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因果)의 내용과 흡사하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즉, 이것이 없어져야 저것도 없어진다는 뜻이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는 차안(此岸-사바세계)이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은 피안(彼岸-깨침의 세계)을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의 차안(此岸-사바세계)이다.

차안(此岸)은 작은 것을 얻으면 작게 잃게 되고,

큰 것을 얻으면 크게 잃게 되는 세계이다.

 

결국 하나를 집착하여 가지면 하나를 잃게 되고,

만개를 집착하여 가지게 되면 만개를 잃게 되는 세계이다.

과연 나는 어느 만큼의 욕심과 집착으로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즉, 즐겁고 행복한 것을 열 개 가졌다면 괴롭고 불행한 것도

열 개 가지게 되는 것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라 했다.

어느 때는 즐거운 낙업(樂業)이 나타나고,

그 과보(果報)로 인해 어느때는 괴로운 고업(苦業)이 나타나게 된다.

마음속의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말미암아 고락(苦樂)의 업(業)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연히 나타나는 인과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한다는 것은

그림자를 보고 시비하는 바보와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내게 나타난 현실은 내 마음의 그림자이니,

나의 모습에 불평불만을 갖고 시시비비하는 것은 더욱 안될 것이다.

 

나타나는 이대로가 여차(如此-이와같은)요 여시(如是-이와같은)요, 진리요,

그러함에 더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니니, 보고 듣는대로 마무리를 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풍선효과라는 것이 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필연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눌러야 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불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모습과 세상의 이치란,

풍선효과와 같이 한쪽만을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이쪽을 눌렀는데 다른 쪽이 불거진다고 하여 불평과 불만을 가진다면

스스로 속임을 당하여 괴로움을 자처하게 되는 일이다.

이쪽을 누르면 다른 쪽에서 불거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차(如此) 여시(如是) 즉, 이와 같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써 왈가왈부를 그쳐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분명 이렇게 하고 싶은데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에도 없는 것을 선택할 때가 있다.

 

이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선택하든 저것을 선택하든 결과는 똑같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록 잘못된 선택이 될지 몰라도

모든 일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는 같은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전체를 보면 잘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선택하든 저것을 선택하든 풍선효과와 같은 인과(因果)의 현상을 바로 보고,

이와 같은 고락(苦樂)인과의 이치를 믿고 마음을 놓아서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고민과 걱정을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차안(此岸-사바세계)에서는 어차피 인과(因果) 인연으로

생멸(生滅)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고락(苦樂)에 의해 결과가 같다는 것을 믿고

그때그때 번뇌 망상을 놓고 또 놓고 놓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피안(彼岸-저 언덕-깨침)의 마음이 되어

인과(因果)에 걸리지 않는 공(空)한 마음으로 평안해질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순간순간 마음이 어지럽다면 매일매일 기도로 극복하라.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참선을 해보라.

또 무엇이든 보시하라, 보시는 따분한 마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잊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

 

송(頌)

이것을 선택하던 저것을 선택하던 결과는 똑같다.

고락(苦樂)의 인과(因果)는 더도 덜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택하거나 선택한 후 미련과 집착이 없다면

여차(如此) 여시(如是) 즉, 있는 그대로 평안함이라.

 

[불교신문 3794호/2023년11월14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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