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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제73화 생각을 우선 멈춰야 한다 -

by 수선화17 2024. 4. 30.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신심명 강설]

- 제73화 생각을 우선 멈춰야 한다 -

 

본문

언어도단(言語道斷) 

비거래금(非去來今)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로다.

 

강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고

생각으로 짐작할 수도 없음을 말한다.

또 심행처멸(心行處滅)이란 마음의 작용이 전혀 미칠 수 없는 절대 경지를 말하는데,

분별심(分別心)이 끊어진 상태를 뜻한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탕 되어야 한다.

생각은 과거의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따라붙게 된다.

기억은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으로 분별된다.

아무 감정 없이 그냥 생각만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감정이 붙지 않으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좋거나 나쁘거나 고락(苦樂)의 감정이 없다면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취하려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생긴다.

원인을 짓는 때가 있으므로 결과가 나타나는 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언어의 길이 끊어진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언어는 생각을 먼저 한 후에 그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아무래도 감정이 실리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은 고락(苦樂)의 업(業)으로 즐거운 원인과 괴로운 결과의 인과(因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사(生死) 고락(苦樂)을 거듭할 수밖에 없으니

괴로움을 피할 길이 없다.

 

언어의 길이 끊어진다는 것은 생각을 우선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하되 고락(苦樂)의 감정을 전혀 얹지 말아야 한다.

감정을 얹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전혀 의미가 없다.

설사 병이 들었다 해도 괴로움의 감정이 없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괴로움과 슬픔의 감정이 없으면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三世)의 시간은 곧 고락(苦樂)의 인과(因果)에 의해 생긴다.

고락(苦樂)의 감정이 전혀 없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도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생사(生死)와 생멸(生滅)이 문제 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으면 감정의 업(業)이 완전히 사라진다.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는 그냥 생로병사(生老病死) 할 뿐

생로병사에 의한 고통과 괴로움이 전혀 없다.

드디어 아라한과 보살, 부처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수행자(修行者)는 바로 이를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情)에 있어서

고락(苦樂)의 분별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염불,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을 통해 몸과 마음에 녹아있는

고락(苦樂)의 업(業)을 바꿔나가야 한다.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윤회를 계속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고락(苦樂) 시비(是非)의 분별심(分別心)을 가지는 만큼,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고락(苦樂) 인과(因果)속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다보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할 때가 있을 것이다.

또 괴롭고 슬프고 불행할 때 역시 있을 것이다.

속상할 때도 있을 것이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며, 아플 때도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해 시비(是非)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인과(因果)의 틀 안에서 꼼짝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탐진치(貪嗔痴-탐욕, 성냄, 망상) 삼독심(三毒心)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인과(因果) 윤회(輪廻)를 거듭하지 않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평안 하려면 마음을 깨쳐야 합니다.

그리고 수행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이다.

 

송(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과보(果報) 틀을 피할 수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분별(分別)하는 

마음의 업(業)을 바꿔야 하리.

 

[불교신문 3794호/2023년11월14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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