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5> “깊은 '지혜완성'(반야바라밀다)의 삶을 배우고자 하는가?” -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지혜완성으로 편안해
‘위없이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을 얻는다.
지혜 완성이야말로 크게 신통한 참 말씀이자
크게 밝은 견줄 수 없는 참 말씀이리라…
가자 가자 바르게 건너가자 깨달음의 세계로, 축복 있으라!
제5강 광본 반야바라밀다심경의 내용
<반야심경>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산스끄리뜨(Sanskrit)본에도 두 가지가 있고, 한역본(漢譯本)에도 두 부류가 있다.
한국불교 의식에서 암송되는 것은 짧은 약본(略本)이고,
이보다 긴 경문으로 된 것이 광본(廣本)이다.
나는 1980년대 초기 수년간 산스끄리뜨를 전공한 교수님과 함께
산스끄리뜨어를 스터디하며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번역했었다.
그때 각 단어마다 많은 뜻을 지닌 산스끄리뜨(Sanskrit)를 정확하게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체험했다.
물론 한문경전을 번역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
한자(漢字)도 많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역경(譯經)전문 스님들의 번역을 함부로 폄훼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한역(漢譯) <반야심경> 가운데 약본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①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스님 역(402~413년)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고려대장경>과
②현장(玄)스님 역(649년) <반야바라밀다심경-고려대장경>이 있다.
한역(漢譯) <반야심경> 가운데 광본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①반야(般若)스님과 이언(利言)스님 공역(790년) <반야바라밀다심경-고려대장경>
②법월(法月)스님 역(737년)
<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普遍智藏般若波羅蜜多心經)-개원석교록(開元釋錄)>
③지혜륜(智慧輪)스님 역(859년 이후) <반야바라밀다심경-대정신수대장경>
④법성(法性, 847~859)스님 역 <반야바라밀다심경-대정신수대장경>
⑤시호(施護)스님 역(982년)
<불설성불모반야바라밀다심경(佛說聖佛母般若波羅蜜多心經)-대정신수대장경>
⑥시호(施護)스님 역 <불설요의반야바라밀다심경(佛說了義般若波羅蜜多心經)
-고려대장경>의 여섯 종류가 있다.
광본과 약본 <반야심경>의 핵심은 같다.
다만 광본에는 앞과 뒤에 <반야심경>을 설하게 된 상황과 마무리 짓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암송하는 <반야심경>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광본을 먼저 번역하여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는 광본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반야(般若)스님과 이언(利言)스님 공역을 저본으로 했는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능한 쉬운 말로 풀어서 의역을 많이 했다.
<반야심경>은 교리를 설파하는 경이라기보다는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경이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하나의 해석에 연연치 말고 전체적인 흐름과 강조하고 있는
주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길 권한다.
<가>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영취산)에서
많은 비구들 및 보살들의 무리와 함께 계셨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넓고 크며 매우 깊은(廣大甚深)삼매에 드셨다.
<나>그때 대중 가운데 관자재(觀自在)라는 위대한 보살(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깊은 지혜완성(반야바라밀)을 이루었을 때
‘몸과 심리작용(五蘊)’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빈 것(空)’임을
완벽하게 깨닫고는(照見) 일체의 괴로움(苦)과 불행(厄)에서 벗어났다.
(오온은 인간이 ‘나’라고 집착하는 대상인 몸과 심리작용임.)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대한 힘(威力)을 받아 합장공경하고 관자재보살에게 여쭈었다.
“훌륭한 분이시여(善男子),
깊은 지혜완성(반야바라밀다)의 삶을(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이와 같이 묻자,
위대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摩訶薩)이 장로사리불(具壽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훌륭한 남자(善男子)나 훌륭한 여인(善女人)이 깊은 지혜완성의 삶을 살고자할 때는
마땅히 ‘몸과 심리작용(五蘊)’의 성질(性)이 ‘끝없이 변하므로 비어있는 것(空)’임을 관찰해야 한다.
사리자여, 몸(色)은 비어있음(空)과 다르지 않고 비어있음(空)은 몸(色)과 다르지 않아서,
몸(色)이 곧 비어있음(空)이요 비어있는 것(空)이 곧 몸(色)이니라.
받아들이기(受) · 이미지그리기(想) · 의지적 행위(行) · 인식작용(識)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존재(諸法)의 공한 상태(空相)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
더렵혀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비어있음(空) 가운데는 (고정불변하는) 몸(色)이 없고,
받아들이기(受) · 이미지그리기(想) · 의지적 행위(行) · 인식작용(識)이 없다.
눈·귀·코·혀·살갗·사유(眼耳鼻舌身意)가 없고,
형색·소리·향기·맛·감촉·사유대상(色聲香味觸法)이 없다.
눈의 경계(眼界)가 없고 나아가(乃至) 의식의 경계(意識界)도 없다.
근본번뇌(無明)가 없고 근본번뇌가 다함(無明盡)도 없으며,
나아가 늙음과 죽음(老死)이 없고 늙음과 죽음이 다함(老死盡)도 없다.
괴로움(苦)·괴로움의 원인(集)·괴로움의 소멸(滅)·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이 없고,
지혜(智)도 없고 또한 얻을 것(得)도 없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菩提薩)은 지혜완성(반야바라밀다)으로 편안히 한다(依).
그러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서
뒤집힌 헛된 생각(顚倒夢想)을 멀리 여의어 마침내 열반(번뇌가 소멸된 적멸)에 이른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지혜완성으로 편안하기에
‘위없이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아뇩다라삼약삼보리-부처님의 완벽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지혜완성(반야바라밀다)이야말로 크게 신통한 참 말씀(만뜨라, 眞言, 呪)이고,
크게 밝은 참 말씀(呪)이며, 위가 없는 참 말씀(呪)이고, 견줄 수 없는 참 말씀(呪)인지라,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하니 지혜완성의 핵심(呪)을 말하겠다.”
곧 핵심(呪)을 설하여 말하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삼가떼 보디 스와하(스바하)
-가자 가자 건너가자 바르게 건너가자 깨달음의 세계로,
축복 있으라!:이 진언(呪)은 여러 가지 번역이 가능하기에 뒤에 자세히 설명함.)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모든 위대한 보살들은 깊은 ‘지혜완성의 삶(般若波羅蜜多行)에서 마땅히 이렇게 실천한다.”
<다>이렇게 말을 마쳤을 때, 세존께서 ‘넓고 크며 매우 깊은 삼매(廣大甚深三摩地)’에서
일어나시어 관자재보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렇고 그러하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아서 깊은 지혜완성의 삶은 이와 같이 실천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실천할 때에 일체의 여래가 모두 따라서 기뻐하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시자,
장로(具壽)사리불은 크게 기쁨이 충만했으며 관자재보살마하살도 크게 환희하였다.
그때 모임에 있던 천신, 인간, 아수라, 건달바 등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아들여 받들어 실천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광본은 <가>에서 설하게 된 상황을 밝혔고,
<다>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실어 반야심경의 신뢰성을 높였다.
<나>부분이 약본에 해당되는데, 진한 부분은 부연설명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58호/2025년2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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