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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11> “찰나마다 일어나고 소멸하며 끝없이 변하는 오온(五蘊)” -

by 수선화17 2026. 1. 27.

[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1> “찰나마다 일어나고 소멸하며 끝없이 변하는 오온(五蘊)” -

 

나의 몸과 마음’이 실체 없음을 깨달아야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돌아서면 곧바로 집착을 일으키면서 괴로워한다.

반야심경에서 수행하여 깨닫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제11강 반야심경 요지(3)

(가) 반야심경의 요지 3.

<반야심경> 핵심적 요지부분에서 세 번째 요점은 다음 문장이다.

 

③‘몸과 심리작용’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빈 것임을 완벽하게 깨닫고는(照見五蘊皆空)

pañca skandhās, tāṃś ca svabhāvaśūnyān paśyati sma

 

위 산스끄리뜨 경문을 직역하면 (관자재보살이)

‘다섯 가지 무더기인 그것들은 ‘고유하게 있는 것

(svabhāva,, 本性)’이 비어있음을 심안(心眼)으로 보았다(깨달았다)’가 된다.

이 문장은 깨달음에 이른 관자재보살의 경지에서 저절로 파악된 부분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먼저 조견(照見)은 ‘빠샤띠 스마(paśyati sma)’를 한역한 것이다.

빠샤티(paśyati)는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다, 발견하다,

예지(豫知)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 빠스(paś)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이다.

한역(漢譯)을 할 때는 ‘견(見), 관(觀), 능견(能見), 도(覩),

관찰(觀察), 첨관(瞻觀), 성(省)’ 등으로 번역되었다.

스마(sma)는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부사적 요소인데,

현재형 동사와 함께 쓰이면서 과거의 반복적 또는 지속적인 행동을 뜻한다.

 

위의 해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자재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이룬 순간부터

몸과 심리작용이 잠시도 쉬지 않고 찰나도 멈춤 없이 변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통찰하였다.

따라서 고정된 불변의 어떤 것이 전혀 없는 빈 상태라는 것을 매 순간 환하게 살폈다.

조견(照見)이란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양 없는 원리를 지혜 가득한 마음의 눈으로

통찰하는 것이기에 ‘비추어 본다’고 풀이하지 않고 ‘완벽하게 깨달았다’고 번역하였다.

 

이제 마음의 눈으로 살핀 대상인 ‘몸과 심리작용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빈 것’이라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살펴보자.

불교는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하여 절대자유의 깨달음에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혹자는 중생제도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도 하는데,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성불(成佛)이전에는 중생교화를 하지 않으셨다.

깨달음을 구하면서 동시에 중생을 교화한다는 대승의 보살사상도,

스스로가 수행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위(不退位) 정도 되었을 때 가능하다.

자신도 길을 모르면서 위험이 많은 곳에 길안내를 한다는 것은

결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낮은 단계에서도 격려나 권유 등은 가능하다.

 

불교에서는 괴로움(苦)을 일으키는 핵심이 ‘나(我)’라고 본다.

만약 내가 없다면 이 우주의 그 무엇도 괴로움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나’라고 집착하는 핵심적인 대상은 ‘내 몸과 내 심리작용(마음)’이며,

그 다음에 ‘나의 소유’라는 대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라고 굳게 믿고 집착하는 것은

크게 나누어 몸(色)과 심리작용(受想行識)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근본적인 성질 또는 특성이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기에

‘나’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는 상태 즉 비어있는 상태이다.

 

다섯 가지를 하나씩 분석해 보자.

색온(色蘊, Rūpa-skandha)은 몸이다.

루빠(rūpa)는 다양하게 한역(漢譯)된 단어이다.

한역을 보면 색(色), 색상(色相), 색법(色法), 형색(形色),

상(相), 형(形), 상(像), 안모(顔貌), 진(塵) 등 굉장히 많다.

하지만 오온(五蘊)에서의 rūpa(色)는 몸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바깥의 물질세계로 본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으로 봤기 때문이다.

 

몸은 다시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흙의 요소(地大),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大)가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뼈와 살, 피를 비롯한 각종 액체, 체온, 호흡과 움직임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변화를 하고 있다.

좀 더 의학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몸은 70조~100조의 세포(여러 주장이 있음)로 형성되었는데,

이 세포들은 찰나마다 무수히 생기고 무수히 죽는다.

이처럼 무한히 변하고 있는 것이 몸인지라, 이것을 두고 비었다(空)고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의 마음이라고 집착하는 심리작용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수온(受蘊, Vedanā-skandha)은 고통(苦痛), 지각(知覺), 감수(感受)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베다나(Vedan)는 한역(漢譯)에서 수(受), 통(痛), 뇌(惱), 고(苦), 수성(受性),

고통(苦痛), 고뇌(苦惱), 고락(苦樂), 영납(領納) 등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우리 몸에 있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根)이 바깥 대상(五境)과 만날 때(觸)

다섯 가지 인식(五識)이 처음 받아들이는 느낌을 베다나(Vedan, 受)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는 심리작용인데,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운 느낌(苦受), 덤덤한 느낌(不苦不樂受)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또한 찰나마다 변한다.

 

상온(想蘊, Saṃjñā-skandha )은 표상작용(表想作用)이라는 심리작용을 일컫는 용어이다.

삼냐(삼갸, Saj)는 한역(漢譯)에서 명호(名號), 명상(名想), 상(想), 억상(憶想),

사(思), 심(心), 의(意), 지견(知見), 오(悟) 등으로 번역되었다.

앞의 감수(感受)에 이어 얕은 의식 즉 의식의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적인 반응과

인식을 뜻하므로 표상작용(表想作用)이라고 일컫는 심리작용이다.

이미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행온(行蘊, Saṃskāra-skandha))은 표상작용에 이은 의지적 형성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의지나 습관 등 의지적 활동과 무의식적인 심리까지를 포함한다.

그리하여 업(業)과 성격 및 행동의 형성을 담당하는 중요한 단계인데,

과거의 업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업을 만드는 단계이다.

 

식온(識蘊, Vijñāna-skandha)은 식별작용을 뜻한다.

비즈냐나(비그냐나, Vijñāna)는 한역(漢譯)에 심(心), 심법(心法),

지(知), 식(識), 의식(意識), 해(解) 등 다양하게 번역된 단어이다.

오온(五蘊)에 있어서는 앞의 넷과 연계되어 알아차리는 작용을 뜻한다.

 

이상으로 ‘나의 마음’이라고 집착하는 심리작용을 순차적인 네 단계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찰나지간에 일어나고 소멸되면서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는 무한변이(無限變移)하기에

고정불변(固定不變)한 것이 없이 비어 있음(空)이 된다.

 

오온을 분석해 설명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몸과 마음(五蘊)’이라는 것이 불변의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돌아서면 곧바로 집착을 일으키면서 괴로워한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수행해서 깨닫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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