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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13> “어느 정도 수행하면 지혜 완성하고, 공(空)을 체득할까? -

by 수선화17 2026. 2. 10.

[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3> “어느 정도 수행하면 지혜 완성하고, 공(空)을 체득할까? -

 

2년여 밤낮으로 가행정진을 했지만 무쇠상자는 점점 더 나를 옥죄었다.

내 병을 단박에 아신 스승님은 바위 가득한 급경사에 밭을 만들자고 하셨다.

2시간 수면을 취하면서 낮엔 밭을 만들고,

새벽과 밤엔 여섯 시간 염불정진을 2년간 행하였다.

이때부터 일하면서 화두를 드는 것이 익숙해졌다.

무쇠상자는 사라졌고, 화두병은 극복되었다.

 

제13강 반야심경의 안목에 이르는 수행

<반야심경>에서는 깨달음의 결과만 밝혔고,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 수행법이 빠져 있다.

그럼 어느 정도 수행으로 지혜의 완성,

공(空)의 체득으로 모든 괴로움과 재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깨닫기 위한 수행은 만만치 않다.

따라서 방법을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동시에 갖가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정말로 수행에 마음을 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체험한 것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 근기(根機)의 수행자일 뿐이다.

50년 이상 착실하게 수행한 구참수행자(舊修行者)들의 기준으로 보면

나의 수행력은 평균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은 어릴 때부터 내가 체험한 것들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 많이 섞여 있음을 밝혀둔다.

 

①걷기사유와 관찰사유

나는 운 좋게도 첩첩산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던 관계로 30대 초반까지 매일 10km 이상을 걸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걸으면서 천지자연을 살폈고 밤에는 별자리 등을 관찰하는 생활이었으며,

불교를 공부한 후에는 걸으면서도 내적관찰과 화두일념이었다.

 

②생각을 최소화하고 집중하기

다섯 살 때부터 여섯 살 위 누나 따라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엔 누나의 책걸상 옆에 양반다리로 꼼짝 않고 앉아 있길 3년간 하였다.

말없이 오래 앉아있기는 이때부터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자체는 수행이 아니었다.

 

③독서삼매

초등 4학년 때부터 도서반장을 했다.

그때부터 3년간 동화, 단편문학, 세계문학전집, 백과사전까지 다 읽었다.

아마도 2000~3000권 사이의 이 독서를 통해

독해력과 집중력 및 추리력과 논리력 등이 크게 향상된 것 같다.

물론 수행은 아니었다.

 

④자살시도 및 임사체험(臨死體驗)

중학교시절을 부산 변두리에 있던 큰누나의 시댁에서 시작했다.

1학년 1학기는 한마디로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사돈집은 매일 분란이었고,

나는 수많은 밤을 강둑에 나가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새웠다.

그러다가 자살을 시도했는데,

미수에 그치면서 강렬한 임사체험(臨死體驗) 즉 죽음의 세계에 잠시 머물다가 왔다.

 

⑤관불(觀佛), 관상(觀像) 수행

자살에 실패하자 해가 지기 전까진 사돈댁에 들어가지 않았다.

방과 후 산속 절 법당에 가서 3~4시간 꼼짝 않고

가부좌로 앉아 부처님을 바로보고 있었다.

마음으로 살피길 몇 달간 계속하면서 그 시간동안은 편안해졌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을 만나지는 못했다.

 

⑥화장(火葬) 살피기

1학년 2학기 당감동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

주말의 놀이터는 당감동 화장막(화장장)과 공동묘지였다.

화장장 뒤쪽에는 일반인출입금지구역이 있었는데,

특수유리가 설치된 작은 창으로 화장이 진행되던 장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인연으로 열 번 정도 시체 태우는 전 과정을 6시간 이상씩 지켜보았다.

관법(觀法) 가운데 백골관(白骨觀)은 숲에서 임종하는 이의 허락을 받고

시체가 백골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부정(不淨)과 무상(無常)을 체득하는 것인데,

화장장면을 10회 지켜 본 것은 짧은 시간에 부정관(不淨觀)과 백골관(白骨觀)을 공부한 셈이었다.

 

⑦예배참법(禮拜懺法)·예참(禮懺)

예배하면서 참회하는 방법(禮懺)은 주로 업장소멸 목적으로 많이 하는데,

나는 고1 겨울수련대회에서 4박5일간 6000배예참,

20시간 좌선, 20시간 염불과 묵언수행을 체험했었다.

이후 매일 500~3000배 예참을 계속해서 출가이후까지 70만 배 이상 큰절을 했었다.

머리는 맑아졌고 두려움은 없어졌다.

 

⑧수식관(數息觀), 호흡을 통한 집중

고2시절 예참과 동시에 수식관을 닦았다.

대법사 주지 스님의 배례로 대법사에 내방이 있었는데,

주말과 방학 때 수식관(數息觀)을 하였다.

처음에는 가부좌에 선정인(禪定印)을 한 채로

천천히 단전호흡을 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호흡을 헤아렸고,

2단계는 호흡을 따라서 단전과 온 몸으로 의식이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되풀이하였다.

3단계는 호흡을 관찰하는 의식을 마음으로 살피는 공부를 하였고,

4단계는 호흡도 잊고 관찰하는 마음도 잊었다.

한 호흡에 5분까지 길게 가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4~5일간이 찰나 간에 아무 의식도 없이 지나가길 여러 차례 하였다.

큰스님들께 이 결과를 말씀드렸더니 무기정(無記定)에 빠졌다고 꾸중을 하셨다.

 

⑨각종 전문서적 섭렵과 자만의 폐단

수식관을 하면서 당시까지 출간된 철학서적과

동서양 종교서적 및 일체의 불교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선어록을 독파하면서 내가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착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상담을 핑계로 젊은 스님들, 신부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 등과 만나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학생을 못 당하겠네!”하며 자리를 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오만이었다.

어른 스님들이 흔히 ‘도깨비’라고 일컫는 ‘깨달았다고 착각한 요물’이 되어 있었다.

이 병은 은사 스님, 향곡큰스님, 해산큰스님 등의 지도로 벗어날 수 있었다.

 

⑩간화선(看話禪) 수행과 화두병(話頭病)

10대 말부터 큰스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선배청년들과 참선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2년여 화두(話頭)를 들고 참선을 하다가 화두가 한결같아지자 혼자서 정진을 하였다.

밤낮으로 화두를 챙기다보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나를 가두고 꼼짝 못하게 했다.

나는 그것을 ‘무쇠상자’라고 불렀다.

2년여 밤낮으로 가행정진을 했지만 무쇠상자는 점점 더 나를 옥죄었다.

몸무게가 10kg 정도 빠지고 눈은 야수의 눈처럼 바뀌었다.

결국 나는 스승님을 찾아가 출가했다.

 

⑪노동선(勞動禪)·동중선(動中禪)과 염불삼매(念佛三昧)

내 병을 단박에 아신 스승님은 암자 아래 바위 가득한 급경사에 밭을 만들자고 하셨다.

2시간 수면을 취하면서 낮엔 밭을 만들고,

새벽과 밤엔 여섯 시간 염불정진을 2년간 행하였다.

여타 일까지 1인10역이었다.

이때부터 일하면서 화두를 드는 것이 익숙해졌다.

무쇠상자는 사라졌고, 화두병은 극복되었다.

출가 전부터 행해온 염불정진은 70대인 지금까지 최하 10만 시간이상 행하였을 것이다.

 

스승님을 떠나서는 선원과 전문강원에서 정진하였고,

해제(解制) 철에는 21일 단식을 3회 행하였다.

단식을 할 때는 감각기관과 식(識)이 평소보다 열배이상 명료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중앙승가대학교에서는 방학 동안에 35도의 한여름과 영하 15도의 한겨울

기숙사냉방에서 목숨을 걸고 <고려대장경>과 <남전대장경>을 모두 섭렵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출가할 때의 깊은 의심은 모두 해결되었다.

출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점심과 저녁에만 소량의 식사를 해왔고,

60대에 이르기까지는 하루 두 시간 수면만 취하였다.

70대인 지금은 네 시간 정도 잠을 잔다.

 

이상 중요한 체험만 설명한 것인데,

오직 전문 수행에 뜻을 둔 이들을 위한 참고사항일 뿐이다.

지금 나는 늘 편안하고 자유롭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67호/2025년4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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