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2> “자유롭고 편안한 삼매 유지되면 지혜 발현되는 본성자리 만난다” -
본성·청정자성·불성의 경지는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지혜가 발현되는 경지이며,
부처님께서 견성성불하셨다는 경지이다.
이 단계에서 인식의 주체가 탈바꿈하여,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성지·대원경지가 발현된다.
제12강 반야심경 요지(4)
(가) 반야심경의 요지 4.
<반야심경> 요지부분에서 네 번째 요점은 다음 문장이다.
③일체의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났다(度一切苦厄)
이 네 번째의 요점은 관자재보살의 경지이면서 지혜완성의 상태이며,
‘몸과 심리작용’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빈 것(空)임을 완벽하게 깨달았을 때 도달하는 결과이다.
그런데 이 네 번째의 요점은 현존하는 산스끄리뜨 <반야심경>에는 없다.
그러나 현장스님과 꾸마라지바스님 역본에는
‘일체의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났다’는 뜻의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 있고,
반야스님·이언스님 역본과 지혜륜스님의 역본에는
‘모든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났다’는 뜻의 ‘이제고액(離諸苦厄)’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경지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완전한 자유인 해탈(解脫)이 가능한 것일까?
전문적으로 마음공부(修行)를 할 때 진행되는 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단 해탈이 삶의 목적이 아닌 경우는 어떤 단계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수행자는 마지막까지 나아가야 한다.
감각(感覺)→감정(感情)→감성(感性)→지성(知性)→이성(理性)→언어도단(言語道斷)
·은산철벽(銀山鐵壁)→본성(本性)·청정자성(淸淨自性)·불성(佛性)
감각이 중심인 단계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났을 때 순식간에 일어나는 심리이다.
대개 과거의 경험이 업(業)이 되어 반응케 된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심리반응이면서
어떤 경우는 즉각적인 행동반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당사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이 즉각적인 반응도 달라진다.
따라서 첫 반응에 따라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는 어떤 마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취미나 직업도 즉각적인 반응이 있는 것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감정이 중심인 단계
대상을 만났을 때 거친 생각 즉 감정(感情)이 먼저 움직이는 가장 일반적인 단계이다.
보통 정(情)은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번뇌로 분류된다.
이 경우 흔히 칠정(七情)을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다.
즉 정신적 기쁨(喜), 분노(怒), 슬픔(哀), 육체적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오惡), 욕망(欲)이다.
<예기(禮記)>에서는 육체적 즐거움인 락(樂) 대신 두려움(구懼)을 넣었다.
이 가운데 욕망(欲)은 다시 색욕(色欲, 性欲), 식욕(食欲), 수면욕(食眠欲),
재물욕(財物欲), 명예욕(名譽欲)의 오욕(五欲)으로 정리된다.
칠정과 오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이다.
만약 제어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중도(中道)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건강하고 멋진 삶을 위한
좋은 방편(方便,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제어할 힘이 없는 경우라면
탐욕(貪慾), 분노(瞋), 어리석음(癡), 자만(慢), 잘못된 의심(疑),
그릇된 견해(惡見) 등으로 바뀌어 자신을 괴롭히거나 파멸시킨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저주와 거친 욕설 등 분노를 쏟아내느라 바쁘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한다.
감성이 중심인 단계
감성(感性)이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여전히 번뇌로 본다.
감성은 낭만, 아름다움, 분위기 등 느낌을 받아들이는 부드러운 심리이다.
그러나 지적(知的) 또는 이성적(理性的)인 경지보다는 얕아서 쉽게 감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감성(感性)은 문학, 음악, 예술 등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흔히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어느 분야이건 이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성이 중심인 단계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지적(知的)인 사고(思考)에 근거(根據)하여 논리적으로
그 상황(狀況)에 적응(適應)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단계이다.
기존의 모든 지적(知的) 축적(蓄積)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려하고 정의를 실현하려하며,
인권이나 환경 등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학문적 업적을 달성한 학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데,
중도적(中道的) 균형감이 부족한 경우는 외골수적인 편견을 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고급지식과 이미 인정받은 이론에 의지하는 경향이 짙다.
이성이 중심인 단계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대할 때 차분하게 그 이치를 살피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단계이다.
주로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도달하는 경지이다.
세상의 원리나 인간 삶의 이치 등을 살피는 등, 일반인들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깊은 인식단계에 머무를 뿐으로, 참된 지혜의 발현은 어렵다.
언어도단·은산철벽의 단계
이 부분은 일반인들이 경험하기 힘든 단계이다.
목숨을 걸고 수행한 이들이 최후의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체험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말로 설명해봐야
이해하기도 어렵다고해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표현한다.
간화선(看話禪) 수행자는 자신의 근본자리에 대한 의심인 화두(話頭)만 남게 되는
최후의 단계에 이르면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를 은으로 만든 산(銀山)과 무쇠로 만든 벽(鐵壁) 같다고 표현한다.
본성·청정자성·불성의 경지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지혜가 발현되는 경지이며,
부처님께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셨다는 경지이다.
본성·자성·불성이라는 용어는 사전만 찾아도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기에 외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나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한 경지
즉 삼매(三昧)가 유지된다면, 지혜가 발현되는 본성(本性)자리와 만난 것이다.
불교수행의 입장에서는 이 단계에서 인식의 주체(心王)가 전변(轉變, 탈바꿈)하여,
성소작지(成所作智)·묘관찰지(妙觀察智)·평등성지(平等性智)·대원경지(大圓鏡智)가 발현된다.
이성에서 본성으로 넘어갈 때는 은산철벽에 막히지만,
본성을 깨달은 다음엔 은산철벽이 사라져서 찰나지간에 감각까지 모두 통한다.
이 경우는 본성이 여타의 경지에 제한받지 않고,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활용된다.
참고로 설명하면, 일반적으로 ‘깨달음’ 또는 ‘지혜’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모르던 것을 알았을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깨달음 및 반야지혜(般若智慧)와는 완전히 다르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66호/2025년4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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