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반야심경 강설]
- <14> “사리자(舍利子) 자리에서 관자재보살 법문들어야...”] -
깨달음은 논리를 초월하고 있다.
그래서 논리에 탁월했던 부처님의 제자들도
오랜 수행 후 낮은 단계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논리적 사유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지만,
수행에 의해서만 초월적 직관에 이를 수 있다.
제14강 사리자의 등장이 뜻하는 것
(나) 오온개공(五蘊皆空)을 교차하며 설명
①사리자(舍利子)의 등장
앞에서 ‘일체의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였으니
<반야심경>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모두 끝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다음 부분이 이어질까?
매일 반야심경을 암송하는 이들은 대부분 앞부분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광본 <반야심경>에서는 모든 수행자들을 대신하여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 ‘지혜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리자(舍利子)가
관자재보살께 ‘지혜의 완성’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지혜완성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반야심경에서
사리자가 등장하는 것은 뜻하는 바가 깊고 또한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갖는다.
그 부분을 확실하게 살펴보면 반야심경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의 기록을 취합해 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에
마가다 최고의 논사(論師, 사상가) 마탈라(Māthala)가 있었는데,
남인도의 논사(사상가)인 띠샤(Tiṣya)가 찾아와 논쟁을 하길 원하였다.
빔비사라(Bimbisara)왕과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논쟁을 벌여 띠샤가 이겼다.
띠샤는 마탈라가 다스리던 마을과 그의 딸 샤-리(Sāri)를 원했다.
띠샤와 샤-리 사이에 태어난 이가 우빠띠샤(Upatiṣya)였는데,
샤-리의 아들이라는 뜻의 샤-리뿌뜨라(舍利子, Śāriputra)로 더 잘 알려졌었다.
샤-리뿌뜨라는 8세 때 나라의 큰 행사에 참석해서
왕과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논사(論師)들과의 논쟁에서 이겼고,
16세 때에는 아버지의 모든 제자들을 논쟁에서 굴복시켰다.
목건련(Maudgalyāyana)과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둘이 왕사성대축제에서 인생무상을 느껴 당시 6대사상가(六師外道) 중 한 사람인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jaya Belaṭṭhiputta)에게 출가하였다.
오래지 않아 둘 다 각각 100명의 제자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올랐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부처님의 최초 제자 중의 한사람인 아스바지트(Aśvajit, 馬勝)로부터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소멸한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는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존의 스승이었던 산자야(Sañjaya)와 제자들에게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 얘길 듣고 200명의 제자들도
함께 따르기로 하여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로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십대제자가 되었고, 각각 지혜제일과 신통제일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사리자는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지혜제일(智慧第一)이다.
그러나 지혜의 완성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논리적인 혈통이었다.
최고의 논사인 외할아버지와 그를 이긴 아버지의 혈통이었기에
10대에 이미 인정받는 논사였다.
하지만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사리자가 비록 모든 존재를 분석하고
아는 분별지(分別智)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나,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지혜를 완성한 단계인 무분별지(無分別智=對智)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야심경에서는 반야바라밀 즉 지혜의 완성에 대해 질문하고
설명을 듣는 입장이 되어 있으며,
대승보살지(大乘菩薩智)로 상승하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석가모니의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 보자.
왜 고타마 싯다르타는 12세 무렵부터 6년 고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행을 했음에도 성불(成佛)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인도 엘리트층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인도의 지식층은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 사유능력이 뛰어나다.
논리적 사유란 단계적 상승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초월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
이 한계점을 알아차린 순간 6년간의 극한적 고행에 종지부를 찍고,
강을 건너 부다가야로 자리를 옮기셨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행하신 수행은 직관적(直觀的) 비상(飛上)이었다.
‘생사해탈’이라는 의심(화두)을 들고 제1선정에서부터 제8멸진정까지 치고 올라간
싯다르타보살은, 24년 가량 축적된 수행력을 로켓의 연료처럼 폭발시켜
지상(중생계)을 떠나 해탈의 허공으로 날아오르신 것이다.
그때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이었다.
문제는 체험이 없는 제자들에게 그 직관적인 비상을 설명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논리적 사유법을 활용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단히 논리적이다.
이 논리적 사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은 엘리트층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출가제자들은 엘리트층이었다.
십대제자 가운데 최고위층인 바라문출신이 6명,
왕족인 크샤트리아(샤까족)출신 3명,
샤카족의 수드라(노예계급)출신 1인이다.
수드라 출신 우빨리(Upali)존자는 논리적 사유가 아닌 계를 지키는데 가장 열심이었다.
여타 출가자들도 대부분 바라문과 크샤트리아 출신이었고,
이미 다른 스승을 모시던 이들이 다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 까닭은 부처님께서 아주 자상하게 잘 설명해 주셔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깨달음과 깨닫는 방법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자를 반야심경에 등장시킨 것은 논리적 사유의 분별지(分別智)에서
부처님과 관자재보살의 지혜완성의 무분별지(無分別智)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논리적 사유에서 직관적 초월로 탈바꿈을 시도한 것이다.
1983년 중앙승가대학교에 다닐 때
이화여대 소흥렬(蘇興烈, 1936~2019)교수님으로부터 <기호논리학>을 한 학기 공부했었다.
교수님은 기말시험에서 배우지도 않았던 다섯 문제를 출제했다.
점수와는 무관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문제를 푸는데 30분을 썼다.
얼마 후 교무처에서 찾는다기에 갔더니 교직자 스님들과 소흥렬 교수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미국식 사고로 나를 논리학 교수로 추천한다고 했다.
“출제한 다섯 문제는 박사과정 마지막 문제로 다 푸는 이가 거의 없었는데,
스님은 완벽하게 푸셨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국철학회 논리분과위원회의 명예회원으로 수년간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의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이 나에게 논리를 전공하라고 권했다.
내가 교수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논리로 인간의 행복과 깨달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답을 못했다.
사실 그때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알기 위해
이미 러시아의 체르바스키(Stcherbatsky)와
일본 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불교논리(因明)를 깊게 연구한 뒤였다.
깨달음은 논리를 초월하고 있다.
그래서 논리에 탁월했던 부처님의 제자들도
오랜 수행을 한 후에 낮은 단계의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논리적 사유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지만,
수행에 의해서만 초월적 직관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이들은 뜻풀이 정도의 이해를 넘어서
자신이 사리자(舍利子)의 자리에서 관자재보살의 법문을 들어야 한다.
또한 깊은 수행을 하여 직관적 초월로 지혜완성에 도달해야 한다.
서울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불교신문 3866호/2025년4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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